늦바람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요리, 음식과 관계된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한다. '리틀 포레스트'(한국판, 일본판 모두 몇 번씩 봤음)는 최근에 가장 좋아했던 영화이고, 2009년에 나왔던 영화인 'Julie & Julia'는 열 번도 넘게 본 영화이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질릴 때까지 연속으로 먹는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영화도 열 번 넘게까지 보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
3개월 전에 '줄리 앤 줄리아'를 볼 때까지만 해도 파리와 뉴욕을 오가면서 나오는 '요리'와 '음식' 이야기에 나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갑자기 영화 속 내용을 이끌어가는 '블로그'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2002년, 줄리가 40여 년 전에 쓰인 줄리아 차일드의 프랑스 음식 요리책 속의 524개의 레시피를 블로그를 만들어 365일 동안 올리겠다는 도전을 선언한다. 줄리는 줄리아의 레시피를 직접 요리해서 먹은 후 블로그에 매일 글을 올린다. 댓글이 달려지지 않는 것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마침내 유명 신문사와 인터뷰도 하게 되고 책 출간 제의를 줄줄이 받게 되는 이야기가 갑자기 내 영혼에 불이 켜지듯 나의 관심을 끌었다.
블로그에 매일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2개월이 조금 넘은 나의 관점은 요리하는 줄리와 줄리아가 아니라 블로그를 쓰는 줄리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남편이 만들어준 블로그를 시작할 때의 줄리의 비장함을 나도 느꼈고, 조회수와 댓글에 예민해지기도 했었다. 이웃 신청이 들어오면 신기해서 '수락' 버튼을 누르고 이웃의 블로그에 놀러 가 뭐 하는 분인가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쩌다가 댓글이라도 달린 날에는 기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블로그는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정보를 얻었던 도구 역할뿐만 아니라 아이디어와 콘텐츠로 나의 퍼스널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에 도전 정신이 생겼다. 블로그를 직접 해보는 이 기분은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10년 정도 유행 지난 옷을 사놓고 혼자 좋아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우려와 걱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게 나으며 출발한 지금이 가장 빠르다는 말로 덜어주고 싶다.
'생각'과 '고백', '독백', '희망'같은 역할을 해주는 디지털 세상에 나도 줄리처럼 도전장을 던지고 싶다. 365일 동안 포기하지 않고 매일매일 꾸준히 써 내려가겠노라고. 그리고 내년 이맘때 즈음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설레임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