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마 B Apr 17. 2022

민들레 김치를 처음 담궈봤다

환자분이 무농약 야채들을 들고 오셨다


6개월 만에 반가운 환자분이 치료받으러 오셨다. 이 분은 서울 외곽에 살면서 가족과 친인척들이 나눠 먹을 야채들을 계절별로 키우신다. 키운 청양 고추, 상추, 깻잎,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야채들을 골고루 한의원에 가지고 오셔서 주신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가 일체 들어가지 않은 무농약으로 재배한 천연의 맛을 가지고 있는 야채들이다.


재배하는 각종 야채들은 파는 목적이 아닌 나눠 먹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환자분의 웃음을 머금은 편안해 보이는 얼굴 표정에서 야채들도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자랐을지 짐작이 된다. 


어제는 아픈데도 없으신데 멀리서 직접 손질까지 다 한 야채 보따리를 들고 한의원에 나타나셨다. 봄이 한창인 요즘에만 먹을 수 있는 야채를 받아든 나보다 더 즐겁고 흥분된 표정으로 가지고 오신 보따리 속의 부추, 쪽파, 달래, 미나리, 민들레에 대해서 설명을 하신다. 


무농약으로 재배된 쪽파를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단맛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쪼그리고 앉아 뽑느라 허리랑 다리가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야채를 씻으면서 허투루 버리는 게 없도록 더 신경 썼다.


무농약 재배는 물론이고 환자분의 즐겁고 따스한 마음이 거름이 되어서인지 돈으로 주고도 살수 없는 야채들은 보약처럼 먹으면 힘이 날것 같았다.


민들레는 잔디밭에서 자라는 잡초라는 생각에 나에겐 좋은 기억이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자리를 두세배는 확장해가는 민들레는 뽑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미워했던 그 민들레를 먹을 수 있다니 곧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민들레 김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만들기도 어렵지 않아 재료를 준비해 지금까지 담아본 김치중에 가장 빠르고 쉽게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생전 처음 족파를 넣은 민들레 김치를 만들어봤다.숙성되었을때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한다. 부추와 미나리는 전을 부쳐 먹을 생각이다.


엄마의 마음으로 직접 키운 야채들을 손질까지 다 해서 가지고 오는 환자분이 우리 한의원에 계신 걸 보면 나는 복이 많은 것 같다. 이 분을 통해서 나눠 먹는 즐거움과 선물 보따리를 풀때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배우게 된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한적이 있다.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해주는 직원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일 하는 시간을 교대로 단축해 준적이 있다. 그때 그 결정을 내리고 발표 하기전까지 내 마음은 선물을 받고 좋아할 아이들 표정을 상상하는 산타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베푸는 기쁨은 내가 받을 때보다 더 크다는 걸 알았다.


민들레 김치를 만들면서 애완견 순이의 예전같지 않은 건강상태를 잊게 해 주었고, 코로나로 인해 줄어든 환자때문에 걱정했던 한의원도 잊게 해 주었다. 감사함을 알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 처음 맛보는 민들레의 맛이 어떨지 궁금해 미칠지경이다. 사람사는 정을 느끼고,  몸을 바쁘게 움직여 가라앉아 있던 마음을 일으켜 세워 준 환자분께 민들레 김치를 담갔다고 말씀 드려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안되면 어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