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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Apr 18. 2022

10년 전에 산 샤넬 가방

샤넬로부터의 자유를 얻다



5년 동안 박스에 넣은 채 고이 보관했던 가방이 있었다. 10년 전에 가격 보고 충격받을까봐 남편의 혈압을 걱정하며 결제한 샤넬 가방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바깥세상을 구경하곤 했다. 박스 안보다는 세상을 구경하는 게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여겼을 텐데 나는 아까워서 들고 다니질 못했었다. 모임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한의원과 집으로의 출퇴근이 주된 외출인 내가 특별한 날 들고 다니기 위한 가방은 답답한 박스 속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명품 가방의 유행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내 샤넬 가방은 구식 디자인이 되어 갔다. 들고 다니면 긁힐까 봐, 오염물이 묻을까 봐, 가죽이 변할까봐 오만가지 걱정을 다하니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내 성격이 그랬다. 사놓고 아까워서, 닳을까 봐 신지 않고 놔둔 신발, 옷들은 한두해가 지나야 마음이 편했다. 신차 사놓고 문콕 당하지 않는 장소 찾다가 주차하는데 몇십 분이 걸리는 사람처럼 나는 물건에 유달리 애착을 가지고 아꼈었다.


샤넬 가방을 편하게 들고 다니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5년이었다. 어느 날 가방을 친구 차에 두고 내려야 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가 가방 안에 귀중품 없냐고 물었다. 가방 안 잡동사니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방 자체가 귀중품이었으니까. 


5년이 지난 후 나는 박스에서 샤넬 가방을 끄내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소지품들을 넣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5년 동안 샤넬 가방은 내가 가는 곳이 어디든 따라다니면서 모양도 변하고 긁힌 곳도 있고 나의 피부가 닿아 더욱 부드러워진 가죽으로 변했다.


요즘 나오는 신상 가방에는 관심이 없다. 나와 더욱 친해진 10년 된 가방에 애착이 간다. 이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비용을 많이 지불했어도 그 물건은 무용지물이며 손 대는 것 조차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벽을 깨뜨리는 순간 자유를 느끼며 편해진다.


나는 그 이후 더 이상 샤넬 가방을 사지 않는다. 점점 오르는 가격을 감당할 수도 없을 뿐더러 또다시 5년 동안 모셔 놓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이제는 편한 게 좋다. 이것저것 다 넣어 다니고, 바닥에 놓기도 하고 비가 올 때 젖어도 마음 쓰지 않는 게 좋다. 비가 내리는 날 나는 비를 맞아도 샤넬 가방은 필사적으로 비를 맞지 않게 할려고 가방을 보호했던 그런 일을 이젠 하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외모보다는 내면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실용성을, 부담감보다는 편안함을 더 추구하고 있는 요즘이다. 나이 든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명품 가방을 간절히 가지고 싶었던 때가 좋았나 싶다가도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면서 물건에 크게 마음 쓰지 않은 지금의 나이듦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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