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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May 04. 2022

배움의 즐거움은 나이를 잊게 한다

주부학교

내년에 연세가 80이 되시는 여자 환자분이 계신다. 이분은 겉으로 봐서는 70이 안 되어 보인다. 대학 공부하느라 자주 오시진 못하지만 책상에 오래 앉아 허리가 많이 아플 때는 멀리서 일부러 날 찾아오신다. "주부학교"에서 초등 과정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은 대학생이 되셨다고 한다. 주부학교란 고등교육을 마치지 못한 성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설립된 학교이다. 반에서 3등 안에 드신다는 목소리에 자신감과 힘이 들어가 있다. 환자분의 나이를 80이 다 된 노인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알고 보니 그 비법은 바로 공부이고 배움이었다.


그 연세에 공부하러 나오지 않으면 집에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나 시청하며 누워있거나 우울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학교에서 공부하며,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는 게 큰 즐거움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배워야 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라는 김미경 강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환자분이 대학 공부를 마칠 때까지 건강이 허락하길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해 드렸다.


한의원 근처에 있는 주부학교가 인연이 되어 내원하는 학생분들이 많다. 연세는 65세에서 80대 중반이다. 보통 지하철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서 살면서 등교하신다. 이분들의 공통된 말씀은 배우는 게  즐겁고 학교가 집보다 좋아 한두 시간의 등교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허리, 무릎이 아파 걷는 게 힘들어도 학교에 결석한 적이 없다는 이분들의 의지와 열정은 비교적 젊은 내가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한의원에서 만나는 분들은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라고 생각한다.  자리에서 한의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주부학교 학생들을 알게   나에겐  놀람과 충격이었다. 나는 당연히 학교라는 곳에 다녀야 하는  알았고,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고생스럽게 공부했다는 기억이 대부분인데 80 넘은 주부학교 어머님들은  세상에서 공부하는  가장 즐겁다고 하신다. 주름진 얼굴과 여기저기  아픈 곳이 없는 몸이어도 배움의 즐거움이 진통제로 작용하는 장면을 목격할때 나도 거워 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때 아이들을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살 때, 매일 공부하던 나의 모습을 보던 어린 딸이 "엄마는 공부가 좋아? 나 같으면 매일 드라마 보고 컴퓨터 게임하면서 놀 텐데"라고 말했다. 나의 공부하는 모습이 내가 주부학교 어머님들을 보고 놀랐듯이 딸에게도 이해가 안 되고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좌절과 실망으로 힘든 날도 많았지만, 지금은 주부학교 어머님들처럼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결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배움과 공부가 일상이 되었고,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젠 배짱도 생겼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언젠간 쓸모가 있겠지 하는 생각은 한 권의 책을 다 읽기 전에 다른 책을 주문하게 만든다.


환자분의 10년은 젊어 보이게 하는 비결은 공부이고 배움이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처하는 법, 사회 변화의 흐름에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하신다. 나는 솔직히 한의원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진 못한다.( 이런 말을 적는 걸 나의 엄마는 싫어하신다. 뭐 하러 이런 얘길 밝히냐면서, ㅎㅎㅎ, 하지만 나는 솔직한 글을 좋아하고 진심이 들어간 글을 좋아한다. )


돈을 많이 벌진 못하지만 환자분들로부터 돈보다 더 값진 인생을 배울 수 있어 좋다. 한의원에서 인생을 배우고 덤으로 돈도 벌수 있는 나는 이런 이유로 오늘도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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