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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Jun 13. 2022

대통령과 출퇴근을 같이 해본 사람으로서

출근길 희비가 엇갈리다


새언니는 돌도 되지 않은 조카를 유모차에 태워 삼풍 백화점으로 가다가 갑자기 흙먼지가 몰려오는 바람에 놀라서 집으로 되돌아갔다. 1995년 6월 29일에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던 날이었다. 하늘이 구한 새언니와 조카는 지금 대구에서 잘 살고 있다.


그 이후 삼풍 백화점 자리는 수년간 공터로 남아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수많은 영혼들이 떠나지 않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삼성에서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에 삼풍 아파트 주민들은 데모를 했다. 삼성 불매 운동을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은 주상 복합 아파트를 포기하고 대림에 넘겼다.


2004년도에 대림에서 지금의 아크로비스타를 지었을 때만 해도 내가 아는 주변의 사람들은 그 아파트에 들어가 살지 않겠다고 했었다. '귀신이 얼마나 많을 텐데', '무서워서'가 그 이유였다. 나 자신도 아크로비스타에는 살고 싶은 마음이 일도 없었다. 집주인들은 안 살고 거의 전세를 놓았다더라 하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세월이 약인지 우리들 기억 속에 삼풍 백화점의 비극이 잊힐만할 때 대통령이 그 땅에서 나왔다. 저주의 땅에서 행운의 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크로비스타 주변에는 24시간 경찰들이 나와 있으며 사복을 입었지만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있다.


대통령의 출근 시간은 나와 비슷한 오전 8시 30분 전후이다. 대통령의 출근길은 반포대교를 지나 용산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나와 출근 방향이 약간 겹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구경거리와 호사를 누렸다.


대통령의 출근시간이 다가오면 아크로비스타 앞으로 오토바이를  경찰들이 집합해 있고, 경찰차가 불을 번쩍이면서 대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대통령이 출발하기 전에 도로를 비워 놓아야 한다.  일은 교통경찰들이 신호를 조작해서 출근 동선의 길에 대통령이 논스톱으로 지나갈  있도록 한다. 다른 방향에서 오는 차들은 출근길 1분이 아까운 시간에 대통령이 지나갈때까지 대기해야 하기에 길게 늘어서  있다. 차안에서 얼마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까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교통경찰들이 아크로비스타주변으로 다 모인것 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출발하기 5분정도 전에 나도 출근길에 올랐는데 신호 조작으로 내가 가는 방향은 초록불 신호등이 계속 켜져 있었다. 내 뒤로 오토바이 경찰이 불을 번쩍이며 따라오고 그 뒤에 경찰차, 그리고 벤츠, 승합차 에스컬레이드 세대가 줄줄이 따라온다. 이럴 수가, 대통령과 같이 출근하니 좋은 점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퇴근 동선도 나와 비슷하다. 동작대교를 건너 성모병원 방향으로 가는 나는 다시 대통령의 차량과 만났다. 동작대교가 뻥 뚫려있었다. 마음껏 속도를 내어 달렸다. 퇴근 시간이 무려 15분이 단축되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날 때 뭐가 가장 아쉽냐고 물었더니 에어포스 원이 가장 그리울 거라고 했고, 로라 영부인은 백악관 셰프가 해주는 음식이 그리울 거라고 했었다. 대통령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냐만은 이번에 출퇴근을 같이 하면서 대통령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벤츠 차량 뒤에 똑같은 검은색 에스컬레이드 세대가 나란히 따라가는 걸 보고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벤츠를 타고 출발했지만 중간에 저 세대 중 한대에 대통령이 옮겨 타고 있겠지? 아님 저것도 트릭인가. 대통령은 조용히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걸까. 나 혼자 하는 상상도 즐거웠다. 내가 뽑은 대통령은 아니지만 뜻하지 않게 나의 출퇴근 길을 활짝 열어놓았고, 영화를 찍는 것 같은 드라마틱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었다.


한편으론 영문도 모른 채 신호대기를 해야 하는 시민들의 불편함도 대통령의 출퇴근 시나리오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방향이 같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방향에서 오는 차량들은 무작정 대기해야 한다. 이전의 대통령들이 일반 도로를 이용해 출퇴근을 한 적이 없었던 터라 이번에 시민들의 출퇴근이 어떤지 몸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신호조작으로 일사천리로 통과하는 대통령은 일반 시민들의 불편함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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