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반려견 순이를 입양하기 전에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집안에서 키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는 주변 지인들이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키우게 된 강아지가 자식보다 더 예쁘다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었다. 언니가 키우던 강아지와 고양이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온 적이 몇 번 있었다. 날 빤히 쳐다보는 고양이는 서로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쓰다듬어 주기가 겁났고, 재채기와 콧물이 나길래 감기가 올려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 털 알레르기였다.
계속된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들의 바람데로 말티즈를 입양할 때 아이들이 강아지를 돌본다는 조건을 붙였었다. 그 말을 믿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순진하기 이를 데 없다. 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준후 순이에게 밥을 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깨끗한 물로 갈아주어 마시게 하고, 소변 패드를 제때 바꿔주고, 목욕시키고 예방접종시키러 가는 일들을 내가 도맡아 하면서 아이 하나 키우는 정성과 돈이 들어갔고, 덩달아 순이와 나 사이에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나는 육식과 모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물 학대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는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경멸하기도 했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동물 보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무책임하게 버려진 유기견들을 볼 때는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순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육식을 더 멀리하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서 삼겹살을 굽거나 불고기나 갈비구이를 하더라도 나는 야채 위주로 먹었다. 모피를 입는 것도 동물 학대라는 생각이 들었고 FW 뉴욕 패션 쇼장 앞에서 동물 학대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다. 70% 모피 세일 코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되었지만, 캐시미어니 양털, 양모, 알파카같은 겨울옷의 소재들이 다 동물의 털로부터 얻는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 앞에는 노숙자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박스 한 면을 뜯어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라고 써놓은 한 백인 노숙자 옆에는 큰 개도 같이 노숙하고 있었다. 나는 노숙자보다 "노숙견"이 더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차 안에 넣어 다니던 강아지 간식을 노숙견에게 주기 위해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지고 온 간식을 줘도 되냐고 노숙자에게 묻고는 끼니나 잘 해결하고 있을지 안쓰러웠던 개에게 건네주었다. '좋아할지 모르겠다'는 노숙자의 말과는 달리 허겁지겁 처음 맛보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잘 먹었다. 나는 가지고 있었던 간식을 다 건네주었고 가던 길을 가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작년 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이상했다. 머리를 들 수가 없이 아팠고, 온몸이 다 쑤셨고 일어날 수도, 말할 힘도 없었다. 나오지 않은 목소리로 한의원에 전화해 출근 못 한다는 말을 겨우 하고 이틀 동안 시체처럼 누워 있었을 때 순이가 내 옆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있어 주었다. 순이가 나에게 물을 갖다주고 약을 먹으라고 일으켜 세우진 못했지만 내 옆에 바짝 기대어 누워 자신을 돌봐준 주인을 지켜봐 주는 든든함이 느껴져 많은 위로가 되었었다.
순이는 우리 집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 올해 16살이 되었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80대가 훌쩍 넘었다. 생후 3개월부터 우리와 같이 살기 시작했고, 7살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를 세 번 탔었고, 이후 서울시민의 가족으로 9년째 살고 있다. 항상 까불기만 할 것 같았던 순이가 나이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프로 표시할 수 있다면 순이의 나이(x)와 순이에 대한 나의 근심 수치(y)는 정확히 비례 그래프가 된다.
소파 위, 식탁 의자 위에 풀쩍 뛰어 올라가던 순이의 관절은 10살이 넘으면서 무리가 왔다. 자주 앞다리 한쪽을 들고 있거나 디디려고 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말티즈는 무릎 관절이 약한 단점이 있다고 수의사가 말했을때 혹시라도 수술하게 될까봐 걱정이 많았지만 수술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온 걸 보면 다행스럽다.
뛰어오르던 소파에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다가 14살 때부터는 무릎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아예 계단을 치우고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미끄러운 바닥에서 걷는 게 힘들어 뒤뚱거리거나 자주 미끄러졌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과 부엌 바닥(주로 순이가 잘 다니는 동선)에는 강아지용 매트를 깔았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순이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 그 자리에서 뱅뱅 돌기도 하고, 어딘가 구석으로 들어가 못 나오고 구해달라는 듯이 짖었다. 자다 일어나 구조요청을 보내는 곳으로 가 데리고 오면 다시 자곤 했는데, 며칠 전부터는 낮과 밤이 바뀌어 밤에 잠을 안 자고 낑낑거린다.
나까지 잠 못 자는 밤이 연일 게속되던 날에 알아듣지도 못할 순이에게 "지금이 몇 시야? "라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에게 계속 뭔가를 바라는 순이의 눈길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눈빛을 생각나게 했다. 날 바라보던 외할머니의 눈길은 부드러우면서 뭔가 아쉬운 듯한, 할 말이 많은 듯,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듯 이 세상 제일 그윽한 눈빛이었다.
그런 순이의 눈을 보고 문득 우리와 함께 할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세월을 이기지 못해 나타나는 순이의 증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마지막까지 우리와 함께 지내며 잘 보살펴 주리라는 다짐을 했다.
강아지 한 마리 키웠을 뿐인데 그동안 동물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펫 샵 유리 벽 안 좁은 공간에서 선택되어 자기를 기다리는 많은 강아지들을 보게 된다. 좋은 가족을 만나 평생 교감하며 잘 살기를 바라면서 순이의 간식을 고르곤 한다.
순이와 함께한 우리 집은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네 명이 살던 집이 어른 두 사람과 반려견 한 마리가 사는 집으로 바뀌었고, 순이의 붙임성은 어른 두 명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순이가 없었다면 깊이 알지 못했을 동물보호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 주었고 동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