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힘이 빠질 때, 화가 날 때 , 울고 싶을 때 위로가 되는 음식
국립 의료원에서 한방 진료부 인턴으로 일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살았던 대구에서의 기억은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을 떠 올리게 한다. 엄마의 집밥이 먹고 싶어 3시간 반을 차로 달려간 적이 있다. 대구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미리 제육볶음을 준비해 놓으신다. 갓 해서 뜨겁게 먹어야 맛있다며 내가 도착하기 30분 전에 불려놓은 쌀에 전원을 꽂아 밥을 하시고 도착하자마자 양념이 배어있는 고기를 팬에 볶기 시작하신다. 뜨거운 제육볶음 위에 엄마가 직접 만든 쌈장과 다지듯이 잘게 썬 청양 고추를 올려 상추에 싸서 먹을 땐 맛이 있어 행복하고 어렸을 적 먹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던 기억도 되살아나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나의 소울 푸드이다.
엄마에게 제육볶음 양념 레시피를 물어볼 때마다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고추장에 간장, 마늘, 파 다진 거 넣으면 된다. "
요즘 요리 블로그에 나오는 정확한 계량이 아니다.
엄마의 손맛, 가족이 맛있게 먹을 상상을 하면서 아끼지 않고 양념들을 팍팍 넣어 만드는 음식이라 더 맛있는 거 같다. 내가 양념을 아끼며 만드는 매운 돼지고기 볶음이랑은 확실히 다른 맛이다.
한의원을 하면서 환자들로 인해 기쁨이 충만한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도 많다. 환자를 적게 본 날, 내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 싶은 날의 퇴근길은 어깨가 축 처지고 마음이 허전하고 허탈하고 힘이 빠져 집에 가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럴 때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있다면 힘이 날 거 같은데 현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퇴근할 때 기분에 따라 생각나는 음식들이 다른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소주나 막걸리 같은 알코올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면 평소엔 살찔까 봐 , 건강에 좋지 않을까 봐 외면당하던 달달한 음식들이 내 마음속에서 원한다.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위로받고 싶을 때 따뜻하고 달달한 코코아가 생각나 퇴근 후 저녁 집에 가서 만들어봤다.
유기농 코코아 가루 한 숟가락,
설탕 한 숟가락(기분에 따라 두 숟가락 해도 좋을 거 같다.)
물 반 컵을 부어 소스팬에서 끓인다.
그런 다음에 우유 한 컵을 부어 중불에서 3분간 데운다.
보통은 이렇게 먹는데, 달달하기만 하고 너무 밋밋하다.
그래서 난 카이엔 페퍼를 톡톡톡 넣는다.
매운맛은 묘하게 나의 목구멍을 자극하는데 달달함과 함께 넘어가는 자극적인 매콤함은 흐트러진 내 마음을 추슬러 주는데 한 몫한다. 축 쳐진 나의 어깨를 움찔하게 해 주고 에너지가 필요한 내 마음에 시동이 걸리듯 뜨겁게 불을 피워 주는 거 같다.
그리고 또 나를 위로해주는 달달한 음식은 크렘 브렐레이다.
언젠간 집에서 만들어 보고 싶은 디저트인데 달달함과 부드러움을 주는 걸로는 크렘 브렐레가 으뜸인 거 같다. 커스터드 크림 위에 뿌려진 설탕을 화력이 센 주방용 토치로 열을 가해 유리처럼 변해버린 캐러멜 토핑을 탁 깨서 먹는 재미도 좋고 그 아래에 있는 크림을 먹으면 얼어있던 마음이 저절로 녹으면서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달달한 음식들이 생각나지 않는 날들이 많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가끔 눈물 날 정도로 힘들 때 나와 함께할 수 있는 크렘 브렐레와 핫 쵸코가 있어 덜 슬픈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