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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Nov 06. 2020

Ep.5 잊을 수 없는 첫 외국 도시  

외국 처음 와본 부산 여자


브리즈번에서의 첫 번째 날은 다사다난했지만 잘 보냈다. 

이틀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의 베란다에 나가 아침 식사를 하며 조금은 떨어져 있는 푸릇푸릇한 자연 가득한 시티뷰를 즐겼다. '오늘은 뭐부터 해야 하지?'라며 치즈와 크래커를 쪼개어 먹으며 연신 고민했다. 브리즈번의 중심가 퀸 스트리트 몰(Queen Street Mall, 브리즈번 중심부 보행자 전용 쇼핑몰)을 먼저 정복해 보고 싶었다. 길치인 내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 호주에 온 이후로 내가 내딛는 모든 걸음은 의미 있는 도전 그 자체였다. 


아쉽게도 나의 비공식 첫 도전이었던 숙소에서 같이 지냈던 2명의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지기는 당연히(?)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재치 있게 이야기하던 나였다. 그래서 외국에서도 모두 내 친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던 나의 용기는 보기 좋게 처박혔다.

 

느지막이 숙소에서 나와 지도를 보며 천천히 다운타운까지 걸어가는 내내 이질감을 느꼈다. 차분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도시의 모습, 나무와 가든이 주는 자연의 싱그러움, 잘 정돈된 거리와 차도, 자유분방한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 나의 고향과는 너무나도 다름에 '이런 세상도 있구나...'라며 연신 감탄 연발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야 한다는 나의 긴장된 의식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기억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퀸 스트리트 몰에 도착하니 이건 또 재밌는 장면이었다. 브리즈번 시티 한가운데서부터 주요한 거리들과 연결되어 사방으로 사람들만 지나다닐 수 있게 해 놓았고, 거리 양 옆으로 여러 가지 상점들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 도대체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 북적거렸다. 큰 백화점 역시 자리하고 있었고 그 입구가 중심부 어디에서든지 연결되어 있어 자유롭게 드나들며 쇼핑을 할 수 있었다. 



그중 정말 독특했던 부분은 백화점 지하층으로 쭉 내려가면 브리즈번 주요 동네들을 정차하는 큰 지하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버스 정류장은 퀸 스트리트 몰 밑으로 모이고 출발해 각 동네로 뻗어 나가는데, 바쁜 출퇴근 시간과 겹칠 틈도 잘 없었고 버스 간격도 꽤 자주 있는 편이었다. 물론 이 버스 터미널을 찾아낸 것은 순전히 나의 길치 능력 덕분이었다. 빤히 지상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지 못하여 지하까지 내려간 나 자신을 누가 원망하겠는가. 오히려 좋은 정보 하나 더 얻었으니 나에게 땡큐인 셈 쳤다.



어떤 버스들이 지나다니나 구경하고 있던 중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 근처에서 서 있었는데, 그 버스가 10m 정도 앞에서 멈춘 후 계속 정차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갸우뚱하며 무슨 일이지? 왜 저러지? 하며 미어캣처럼 빼꼼 거리고 있었다. 

그때 한 흑인 남성이 ‘ Oh.. Bus is broke! Oh no.. ‘ 라며 혼잣말을 하는 듯했다.(영어가 아마 유창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앞에 서있던 한 백인 할아버지가 슬며시 뒤돌아 보더니, 


‘ Well... The bus is broken down. ‘ 

‘ Yeah yeah. The bus is broke. See? ‘ 

‘ Yes. But I mean... the bus is BROKEN DOWN.  ‘ 

‘ Broken down? Oh... Okay! The bus is broken down! My English bad. Thank you! ‘

‘ No worries mate. ‘ 


이런 대화를 나누며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것이다. 

자칫하면 무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겠지만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는 걸 순간 느꼈다. 나였다면 아마 조금은 기분 나빠하면서도 역시 '아, 영어 잘 못해요. 아이엠 쏘리.' 하며 쓴웃음 지으며 미숙한 나의 영어를 탓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흑인 친구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 하나 없이 정말 당당하게, '아 그게 맞다고? 그래 내 영어 좀 안 좋아. 고마워! '하며 유쾌하게 받아넘기는 모습에, 한국인인 나로서는 어색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또 재밌기도 했다. 




상대방은 악의 없이 베풀었다 하여도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하게 생각하고 색안경을 끼며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그때 느꼈다. 한없이 작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고 나만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며 내로남불의 모습을 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만의 번역기로 왜곡하여 해석했던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찰나의 무언가를 깨달은 나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 다짐했다. 


‘ 오늘은 외국애들이랑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있는 그대로! 인사해봐야지. 쫄지 말자!’ 


사실 숙소에서 자유분방하게 다니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며 기죽어 있었는데, 저 버스 사건을 계기로 0.1% 자신감을 조금 얻게 되었다. 돌아가니 몇몇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온 과일을 씻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한 외국인 남자가 인사하며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좋은 하루 보냈는지, 뭐했는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는지. 아직은 어색하고 뻣뻣한 나의 미소로 대답하며 그와의 대화를 조금씩 이어나갔다. 


그날 버스 정류장 사건 이후로, 그 흑인 친구가 나에게 미친 긍정의 효과는 어마 무시하게 작용했다. 나머지 호주 생활 동안, 난 조금 더 자신감을 내어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 Translink.com.au , dotdash.com.au, 123rf.com , the urban developer, queenslan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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