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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만큼의 성장

의지하고 기대는 법

by Emma
친절한 엠마

나는 기획자고 프로젝트 리더이며, 중간관리자이자 실무자다. 이 미묘한 직무와 책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보면 의도하지 않았으나 어마어마한 예민이가 되어 주위를 얼어붙게 하거나, 나를 괴롭힌다. 어릴 때는 주위를 얼어붙게 했고, 조금 지나서는 나를 괴롭혔으나 요즘은 비교적 잘 살아가고 있다. 친절한 엠마씨는 태어난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사실, 우리 가족들이 들으면 픽-하고 코웃음 지을만한 별명이기도 하고 (ㅎㅎㅎ;;)


친절한 엠마는 늘 동료를 믿는다. 내 보스를 믿고 함께하는 팀원을 믿고, 내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개발자, 디자이너, QA 담당자와 모든 협업자들과 최전방에서 고객을 맞는 CS담당자분들까지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나는 기획자이고, 그들의 영역은 내 분야가 아니므로 난 전문가를 믿는다.


믿는다는 것

나에게 있어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내가 함께할 동료를 택하고 믿기로 결정했으니 이제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전부 혹은 일부라도 내 책임이라는 뜻이었다. 하여 난, 늘 플랜 B부터 플랜 D까지를 준비하고 점검하고 수 많은 경우를 대비해 분주히 움직인다. 지금까지는 꽤 운이 좋아서 나의 신뢰에 대부분 좋은 답을 해주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안짤렸지;;) 하지만, 이것은 당신과 나의 협업에서 서로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지 내가 진심으로 믿고 의지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집이나 일이나

집을 짓기로 했다. 가족들에게도 상의가 아니라 선언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많은 분과 함께 앉아 있었다. 이를 어쩐다.... 나는 누구고, 대체 여긴 어딘가...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그래서 그냥 하던대로 하기로 했다. 집짓는 것이나, 프로젝트 진행하는 것이나 뭐가 달라! 아몰랑! 그래서 시작하는 순간부터 믿기로 했다. 하던대로.


해피앤딩

결론은 해피앤딩이었고, 운이 좋았고, 가끔은 의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라는 걸 배웠다. 집을 짓는 매순간 기대고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게 꽤 할만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너무 이럼 버릇되니 안돼!라며 제동을 건 순간이 꽤 많았지만. 고백하건데 함께하는 모두를 늘 믿지만 진심으로 의지하지는 못했다. 망망대해에서 늘 어딘가를 향해 홀로 노를 저어야하는 심정이었다. "너는 나에게 의지해도 되지만, 나는 아마 그러지 않을꺼야." 이 오만한 생각을 읽었던 사람도 꽤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친절하지만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엠마였을지도 모른다. 이정도 깨닳았으니 한 뼘쯤 성장했을지도.


이제 기대고 의지했던 분들도 모두 떠나시고 오롯히 나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혼자 생각하고 해결해야할 일이 산더미같지만 오래도록 홀로 끙끙앓지않고, 가끔은 부탁이란걸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이거 혼자하기 너무 힘든데 도와줄래?
나에겐 같은 곳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꽤 많다




이것은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할까 고민하다가, 즐거울 나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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