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싶었던 곳
나와 아빠는 절친이었다. 살가운 대화나 스킨십은 없어도 척하면 척하는 베프였다. 강화에 터가 생긴 후로는 누구보다 죽이 잘맞는 동료가 되었다. 햇수로 7년간 난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매주 주말엔 강화에가서 아빠와 집 이곳저곳을 다니며 꽃을 심고, 풀을 뽑고 울타리를 만들고 강아지들을 돌봤다. 아주 가끔 맘이 상했을 때는 아빠가 기다리는걸 알면서 안간 적도 있었지만, 2013년 초봄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든 주말과 휴일의 일상은 강화도 우리집에 있다. 누군가는 니 꽃다운 시절은 모두 꽃을 위해 보냈다고도 했다. 그러면 어때.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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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여기 텃밭이 있던 곳은 원래 안채가 있던 곳이니까 집을 지으면 방은 모두 이쪽으로 하자. 난 현관 옆에 방있는 건 행랑채 같아서 싫어. 어때요?
그래, 내생각도 같아. 굿 아이디어네.
아빠. 집은 긴 기역자 모양이면 좋겠어. 해지는 걸 거실에서도 보면 좋을 것 같아. 여긴 노을이 멋지니까.
그래. 그러자.
아빠. 아빠 방앞에는 이 홍매화가 눈에 딱 보이게 심으면 좋겠어. 선비들이 그렇게 좋아했다던데 아빠는 이 나무 어때?
나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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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 늘 바빴던 주말, 한 숨 돌리며 커피 한 잔 하면서 늘 하던 대화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것을 천천히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시간은 항상 내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작년 6월에도, 올해 2월에도 우린 시간이 조금 더 길 줄 알았다.
아빠는 주말이 되서 내가 올 때쯤이면 항상 밖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일도 일이지만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 나는 안다. 일요일 늦은 저녁에 돌아갈 때도 문단속을 한다면서 기어이 갈 때까지 우릴 보고 있었던 걸 나는 안다. 그래서 이제 그렇게 못할 수도 있으니 새집에서는 아빠 방에서 늘 돌보던 땅과 우리가 오고가는 길을 편하게 보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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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 창으로 보면 앞에 밭이랑 저 앞에 길까지 다 보이게 될꺼야. 엄청 시원한 창일껄?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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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내편이 아니었고, 내 바람도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 창은 아빠를 위한 창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늘 내다보며 그리운 사람들을 기다리는 곳이 될 것이다.
나는 더이상은 아빠 생각에 울지 않는다. 대신 마음껏 추억하고 마음껏 그리워하면서 살기로 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이 있던 그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