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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Aug 26. 2020

그냥 웃지요

후회하면 안돼

감사한 일이었다.


비오면 또 기약이 없으니 오늘 아침 일찍이라도 가져다 주신 흙더미. 저걸 펴긴 해야하는데 비그치고 땅마를 때까지 또 기다려야해서 기약도 없이 다음에 연락주시기로 하고 통화를 끝냈다.

분명 감사할 일인데, 한 달 전만해도 온갖 이유로 기쁠 일이었으나 이젠 모르겠다.


집을 짓겠다고 시작한지 일 년이 되었다.


일 년이 넘어가도록 내 아름다웠던 정원은 아직도 흙더미가 쌓여있다. 내가 좋아한다고 아빠가 마당가득 심어 놓았던 능소화는 뜯겨나가서 이곳저곳에서 간신히 싹을 틔우고 있길래 오늘 아침 일찍 보이는대로 캐서 옮겨 심었다. 아마 그때부터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서글픈 기분이.


오늘 하루, 가스통 위치를 옮겨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고, 제대로 마감안된 에어콘 배관을 발견했고 거기서 벌레도 나왔고, 수전 회사에서는 일요일에 온다던 a/s를 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고, 올레티비는 내가 신청한 상품이 아닌 이상한 것을 세팅해놓은 걸 발견했다. 아마 찾아보면 문제가 더 많을텐데 알아보기도 싫고 그만 알고 싶다.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슬퍼졌다. 슬퍼서 다 귀찮아졌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미뤄두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후회하기 시작하면 정말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집 이름을 지어야하는데 요즘 집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안짓기로 했다. 이집은 무명이다. 그냥 우리집은 우리집이지 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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