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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Sep 21. 2020

K사가 내게 준 것

많지만 그 중 하나

입사 후 회사 이름이 세 번이나 바뀌었던 K사가 내게 준 것은 평등하게 일하는 가치였다.

직급도 없고 (사실.... 직급 이름만 없지, 아예 없지는 않다. 그게 아예없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서로를 부를 때는 영어이름을 쓰고, 모두가 존대를 했다. 이 문화가 어느 샌가 IT업계를 놀리는 것 같은 밈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지만.


처음에 어색하던 그 영어이름을 너도나도 부르고, 서로에게 존대를 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소통은 모든 일을 참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심지어 함께 일했던 우리 보스는 그냥 다 반말하면 안되냐는 파격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 강력히 반대를 해드렸다. 그냥, 모두 존대하면 되잖아요!ㅋㅋㅋ  악용하는 사람에겐 참 안좋은 문화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문화였다.


나이와 직급이 올라가는 기획자는 실무기획자로서 자꾸만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이 수평의 문화는 그런 것쯤은 가볍게 깨주었다. 호칭과 대화가 수평이 되자 나보다 어린 조직장, 나보다 나이 많은 조직원들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져갔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조직 리더는 나이순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면 어린 조직장과 함께 실무자로 일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다. 인수합병의 회오리 속에 참 힘든 일도 많았고, 결국 지금은 전 직장이 되었지만 그 전직장은 나에게 나이와 직급의 틈바구니 속에서 숨쉬는 법을 알려주었다.


지금 조직개편을 하면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문제가 K사였다면 별 일도 아니었을 듯하여 갑자기 생각났다. 왜 아직도 나이와 직급에 목을 메다는 걸까도 싶었다. 그래서 가끔 인터넷 동호회나 영어학원 친구들로 오해받는 전직장 동료들과의 대화가 그리워진다. 


다들 잘 지내고 있나요? 

아직도 저를 엠마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옛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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