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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isgraceful Girl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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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Jeon Oct 24. 2021

7. Disgraceful Girl

미국인 데이브는 아파트의 4개의 방 중 가장 큰 방을 쓰고 있었다. 방 안에 화장실과 발코니가 있었다. 내 방은 4개 중 제일 작았는데, 침대와 옷장을 빼면 반듯하게 누울 자리만 남을 정도였다. 3명의 룸메이트들은 모두 다른 크기의 방을 살고 있었는데 동일하게 800nt를 방세를 내고 있었다. 한국 돈으로는 32만 원 정도의 월세였다. 나는 막연하게 데이브 방은 15000nt(60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짐작했다.

내가 이 아파트에 산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데이브가 태국에서 암호화폐 회사를 차려왔는데, 아예 우리 아파트를 떠나 태국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데이브는 룸메이트들의 렌트비를 모아서 집주인(房東, 팡동)에게 보내거나, 2주일에 한 번씩 청소도우미를 부르는 등의 아파트를 관리하는 얼팡동의 역할을 해왔다. 데이브는 헬레나가 가장 믿음직스러웠는지, 이 역할을 헬레나에게 주고 아파트를 떠났다.

나는 인턴을 끝냈고 정규직을 찾아 여기저기 CV를 넣고 인터뷰를 다니고 있었다. 내가 대만에서 부딪치고 성장하는 동안 옆 방의 톰은 1년 동안 집 안에 박혀 넷플릭스만 보고 살더니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톰의 방에는 다른 영국 여자아이가 세를 들어왔다. 에린은 영국의 한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는데, 중국인인 남자 친구를 더 이해하기 위해 대만 정부에서 주는 국가보조금을 받고 대만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를 위해 중국어를 배웠으며, 3개월 후에는 중국으로 가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뵙고 오기도 했다. 사랑스러운 그녀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새로운 사람이 아파트에 이사 올 경우, 세 달치의 월세를 보증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관례처럼 굳어진 룰이었는데 보증금은 기존에 방에 거주하던 사람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당시 내가 아파트에 들어올 때, 데이브는 보증금을 받기 위해서는 이사를 가기 전에 새로운 룸메이트를 찾아 받아가면 된다고 했다. 얼팡동이 된 헬레나는 톰이 이사 가고 에린이 이사 오면서 보증금 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만약에 팡 동이 아파트 렌트를 그만두게 되면? 방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으니 보증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얼팡동인 헬레나가 보증금을 물어줘야 하는 게 아닌지 그녀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헬레나는 태국에 있는 데이브에게 '최초의 보증금'은 어디로 갔냐고 물어봤다. 최초의 거주자들이 아파트를 들어올 때, 세 달의 보증금은 공중으로 사라지고, 다음 룸메이트에게 돈을 받게 되는 악습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데이브는 이 사안에 대해 모른 척했고, 실제로 최초의 보증금의 행방을 추적할 수 없었다. 불안해진 헬레나는 도덕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나와 에린에게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긴가민가했다. 이 문제에 캐묻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증금은 내가 이 아파트를 떠나고 다음 세입자만 찾으면 어쨌든 수중에 돌아오는 돈이었다. 헬레나가 '정의의 여신'처럼 흥분하며 나에게 데이브를 고발하자고 했을 때, 거기서 그녀를 멈추게 했어야 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망치기 시작했다. 방 주인에게 먼저 이 보증금 게이트를 밝혔다. 방주인은 자신은 애초에 보증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믿을 수 없었다. 변호사를 찾아가 Letter Before Action을 써오고 나와 에린과 함께 데이브에게 메일을 보내자고 했다. Letter Before Action 이란 법에 위촉되는 내용을 당사자에게 전달하고 만약 이에 대한 어떠한 답변도 없을 경우, 법적으로 당신을 고소하겠다는 일종의 '협박' 메일과 같았다. 며칠 후 데이브의 회신이 왔다.

“There was no problem, until you found a problem that didn't exist."

고통스러웠다. 데이브가 보낸 지독한 이메일을 읽는 내내 그의 뒤틀어지고 고약한 내면을 마주했다. 데이브는 헬레나가 갑자기 엉뚱한 '정의감'에 불타는 것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비웃었다. "문제없었어, 네가 존재하지도 않던 문제를 발견하기 전까지"

“See you in September. but for now enjoying a fresh coconut juice.”

'9월에 보자고, 나는 지금은 신선한 코코넛 주스를 즐길 거야’라는 조롱이 메일의 끝이었다. 그리고 데이브는 나에게 라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헬레나는 월세를 내지 않는 혜택 때문에 얼팡동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이다. 나는 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사건이 커지자 집주인 팡동 Mark는 더 이상 아파트 렌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3개월 보증금도 못 받고 잘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 그제야 헬레나에게 휘둘려 어리석은 일을 했다고 느낀 나는 팡동 Mark에게 메일을 썼다.

"안녕 마크, 나는 이 아파트에서 1년 동안 살고 있어. 나는 6월에 정규직을 받고, 타이베이에서 오래 살 예정이야. 나는 정말 이 아파트가 좋고, 일하면서 이 만큼 좋은 집 찾기 어려운 거 알잖아. 네가 렌트를 그만두게 된 이유가 있다면 알려줘. 만약 보증금이 문제라면 내가 그 보증금을 너에게 줄게. 우리 더 이야기해보자. "그의 답변은 절망한 나조차 웃게 했다. 그는 회신으로 신이취에 있는 다른 아파트를 추천해줬는데, 한 달에 23,000원(92만 원) 정도 되고 버스 정류장이 앞에 있어서 시끄럽다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세상의 불평등과 부도덕에 동조해서는 안된다. Good Girl로 자라온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나오고 대만 방송국에서 일하는 전문 통역사로 일하는 헬레나가 '도덕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우리는 최초의 보증금을 찾아내야 해'라고 말했을 때, 아무런 비판 없이 그녀에게 동조했다. 나는 조금의 불명예도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헬레나도 고고하지 않았다. 명목 상의 도덕과 정의가 앞에 내세워졌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월세를 내지 않는 약점이 밝혀지고 최악의 경우 다른 사람의 보증금까지 자기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자기 검열을 하는 대신에 헬레나에게 나는 이 집을 나갈 때, 다른 세입자에게 3달의 보증금을 받으면 그만이니 일을 크게 벌리지 말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Disgraceful girl은 아파트에서 쫓겨나지 않고, 보증금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며,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나날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