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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Jeon Oct 24. 2021

6. 외로움이라는 동력에 대하여




개기월식

우연히 오늘 개기월식이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특별하게 개기일식을 보자고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새벽 2시 반까지 나는 깨어있었고, 충동적으로 강변으로 가서  달을 찾았다. 태양처럼 밝게 빛나던 뚱뚱한 달이 한쪽 뺨을 어둠에 내주고 있었다. 점점 달은 갸름해져 3시 30분 정도 되자 정말 아주 얇은 띠모양으로 변했다.  달은  가장자리의 붉은 고리만 남게 되었고, 달이 너무 밝아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목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변 공원에는 나 말고도 간만의 특별한 이벤트를 보러 온 외롭고 고상한 영혼들이 있었다. 달을 따라 달리기를 하기도 하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자전거족도 있었다. 나는 강변을 걷다가 서다가 바닥에 앉았다 서성거리다가 하면서 달의 변화를 맛보았다. 낭만적이면서 고독하고 향기로우며 사랑스러운 새벽이었다.


그렇게 강변 공원을 헤매고 걷고 서성이다가 비밀스러운 장소를 찾아냈는데, 강변에 위치한 작은 불당이었다. 대만에서는 도심을 비롯한 생활 근처에 작은 불당과 절이 있다. 접근성이 좋아서 퇴근하는 길에도 간단히 들려 부조금을 내고 두 손을 모아 바이 바이(拜拜), 즉 소원을 빈다. 강변을 바라본 곳에 위치한 이 작은 불당에는 불경을 외는 신비로운 노래가 틀어져 있었다. 그날 달의 색처럼 은은한 붉은빛의 등이 켜져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개기일식을 보며 한 동안 머물렀다. 고요하고 적막한 그곳에서 나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열매가 나무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누군가가 뒤에서 쳐다볼 것 같은 공포감에 뒷목이 서지만, 두려움을 즐기며 새벽에 모험을 즐기고자 한다. 하지만 무서움을 이기지 못한 나는 그토록 강력한 낭만을 두고 사람들이 있는 길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날 이후 강변의 작은 절은 나의 비밀장소가 되었다.


뤼다오를 전동차로 한 바퀴 돌기

몸과 정신에 박혀있던 나쁜 습관을 지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해보지 않은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고 싶은 열망은 가득하다. 나는 게으르고 관성적이어서 주어진 환경에 스며들어 사회가 제시하는 판에 찍은 생활을 따르곤 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면서도 서울을 가기 싫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도 귀찮아서 잡지 않았다. 스스로 변화에 대한 유리 벽을 만들어 그 속에 조용히 잠식해 갔다. 새로운 환경에 자꾸 부딪쳐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지독한 권태와 익숙함을 깨버러야 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한국과 떨어져 있는 곳으로 왔다. 대만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를 감싸던 유리 벽이 사라졌다. 이리저리 혼자서 잘도 놀러 다녔다. 내 발은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내가 자의로 묶어놓았던 사슬을 끊고 나는 마음속으로 갈구하던 자유를 찾아 세상을 탐닉했다. 동해처럼 타이동의 바다는 깊고 어둡다. 타이동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가면 뤼다오(綠島, 초록색 섬)에 갈 수 있다. 아침에 들린 항구는 생경하다. 비릿한 항구 냄새를 맡으며 멋도 모르는 샌님은 항구에서 볶음밥을 아침으로 사 먹는다. 뤼다오로 가는 배에 오르니, 쾌쾌한 실내 냄새가 난다. 의자에 잔뜩 걸어져 있는 분홍색 비닐봉지가 보인다. 배가 느릿느릿 시동을 걸고 무거운 몸을 움직여 파도에 실리게 되면 배는 45도의 각도로 출렁거리게 된다. 나는 아침에 먹은 볶음밥을 원망하며, 뱃멀미에 시달렸다.


1시간이 걸려 도착한 뤼다오는 새로운 세계였다. 아무 계획 없이 뤼다오에 온 나는 전동차를 빌린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뤼다오를 전동차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해변가를 따라 시계 방향으로 뤼다오를 돌면서 유명한 관광지를 발견할 때마다 전동차를 멈추고 구경한다.  한적한 뤼다오에서 전동차 하나로 나는 자유를 얻는다.  해변가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탐험가처럼 섬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섬 가운데 지점에서 들어가는 길이 풀 숲에 가려진 평야를 발견한다.  무성하게 자란 풀 숲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속이 뻥 뚫리는 평야와 절벽 그리고 바다가 눈앞에 들어온다. 그리고 자연 염소들이 마치 자신들만의 세상인 듯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이곳에서 한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있었다.  바다, 절벽, 염소를 바라본다.  자신을 청년으로 내면화하면 신기하게도 생명력과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 삶을 누군가에게 의탁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 몫의 인생은 감당해보자고 결심하면 내가 동경하던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다. 어깨를 펴자. 보폭을 크고 시원시원하게 걷자. 담대한 이미지로 자신을 만들어나가면 다른 사람들도 나의 눈빛과 몸의 움직임을 통해 원하던 이미지로 어느새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동력에 대하여

오늘은 룸메이트들이 집에 오지 않아 셰어 플랫은 밤이 돼도 정적만 흐른다. 외롭다는 감정은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며 심심하다는 느낌에 가깝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지도 않고 친구를 불러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몸과 마음은 지쳤는데,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는 난감한 상황이다. 낮잠을 자서 평소보다 졸리지는 않고 다음 주에 있을 면접 때문에 주말에 약속을 잡기도 두렵다. 밤이 되면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든다. 늦게까지 열려 있는 카페도 있지만 들리는 것도 한두 번뿐이지.  음악을 들으러 가볼까, 술을 마시러 가볼까. 그것도 누군가와 함께여야 할 텐데 그것마저 번거로운 기분이 든다. 아침에는 중국어로 발표를 하고, 오후에는 중국어로 이력서를 썼다. 하루에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정도를 넘치지 않게 안배하고 있는데, 오늘은 스트레스 지수를 다 써버렸다. 기대했던 골목 카페에 갔지만, 감성은 채워지지 않았고, 젊은 주인이 잡지와 인터뷰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사장 한 달 수입이 좋다는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귀에 들어왔다) 150 타이삐의 라테는 밍밍했고 비쌌다.  어제 슈퍼마켓에 가는 길에 잠시 멈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는 넘어갔고 밝음의 잔상이 남아있는 푸르고 어둑한 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오늘 낮잠을 자고 나와 무거운 노트북을 매고 카페로 걸어가던 쨍하던 하늘도 진실로 아름다웠다. 대만은 하루가 다르게 다시 아름다워지고 따뜻해지고 있다.






외국인이 정식 워킹비자(공작증)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단 한국 마케팅 공고를 찾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였다. 대부분 CS 업무나 번역 업무가 많았고 한국 기업의 대만지사도 열심히 찾아봤으나 나에게 맞는 직무는 없었다. 공고를 겨우 찾아내어 서류를 합격하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되면 비자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면접관을 만났다. 회사가 정식 비자를 준비해주지 않고 워킹 홀리데이나 결혼 비자 등으로 어떻게든 대만에 머물라는 뜻이었다.


대만 취업 사이트 104를 쥐 잡듯이 바라본 지 2개월이 흘렀다.  많은 서류를 보내고 허망한 면접을 다녀온 후 무(無) 상태인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그때 예전 인턴 회사에서 만난 홍콩 친구가 한국인 마케터를 뽑는 회사가 있다며 추천해주었다.  친구는 같은 회사의 홍콩 마케터 인터뷰에서 떨어진 직후였다.


서류를 쓸 때부터 합격할 것이라는 감이 왔다. 워킹 비자를 마련해줄 수 있는 크기가 있는 회사였고 이미 외국인 직원을 제법 데리고 있는 사업체였다.  나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끝나 여행 비자로 대만에 있기 위해 잠깐 태국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  오래 버틴 끝에 내 영혼이 맞닿은 회사를 만날 수 있었다.  1년 전 대만에 왔을 때부터 내 영혼은 좋은 기운을 받고 플로우를 탔다.


정식 오퍼를 위한 지난한 과정

총 채용 과정은 한 달 정도 소요되었다.

1. 서류: 현지 사이트를 통해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제출

2. 온라인 과제 제출: 마케팅 리드가 검색광고와 랜딩페이지 제작 과제를 내줌

3. 첫 번째 면접 1 (  글로벌 마케터 2명 ): 전략 PT 및 역량 면접

4. 두 번째 면접 2 ( 마케팅팀 Lead )

5. 세 번째 면접 3 ( 대표 )

6. 연봉 협상


공작증(working permit)을 통해 거류증과 건강보험 카드도 얻게 되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외국인에서 현지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작은 성취이지만 나를 감싼 모든 기운과 세상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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