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이야기. 고통 속에서 낙관을 찾는 방법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빅터 플랭클은 정신과 의사이자 유대인으로 독일 나치에 의해 세 곳의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였습니다. 부모님과 아내는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여동생과 자신만 살아남았습니다.
나치 수용소를 둘러싼 가시철망에는 전류가 흐릅니다. 절망에 빠진 수감자들은 가시철망에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플랭클은 전류가 흐르는 가시철망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대신에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치열하게 찾습니다. 인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손안에 든 자유는 하나도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빅터는 환경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자유가 주어졌음을 깨닫습니다. 생리적인 조건과 먹을 것을 빼앗아갔지만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한 이 자유는 내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습니다. 운동을 하고 쉬다 보면 이레 천천히 돌아오던 심장박동수가 몇 시간이 지나도 빠르게 펌핑질을 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피검사를 하고 다음날 병원에 가니 의사의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자가면역에 문제가 생겼다며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자가항체 이상이란 외부에서 들어온 나쁜 균과 바이러스를 공격해야 하는 항체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며칠 전까지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하던 저는 그럴 리 없다며 진단을 의심했습니다. 호르몬 약이 멀쩡한 내 몸을 망칠까 봐 두려웠습니다. 며칠 동안 약을 먹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나는 건강하다고 오만하게 확신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낙관을 찾는 방법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로 다시 넘어가 봅니다. 빅터는 끔찍한 수용소에서 정신력을 회복시키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찾아 길을 잃은 듯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느껴져 실망을 하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구하기 위해 멘토를 만나고 때로는 신을 찾아 해결하고자 합니다.
빅터는 말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합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누구도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입니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아이에게 애정을 베푸는 아버지로서, 완성되지 못한 논문 저자의 과학자의 자리로서 각각의 존엄하고 중요한 위치를 가집니다.
죽음의 수용소의 빛나는 문장들은 진단을 받기 전이라면 전혀 진지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문장들이었습니다. 저는 수용소에서의 일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독자의 입장밖에 되지 못했겠지요. 저는 몸이 야워가고 발이 동상으로 얼어가지만 정신은 또렷하게 유지 중인 인물과 자포자기하고 자신의 변을 뭉개고 며칠을 살아가다 급격하게 죽어가는 인물을 비교하며 저의 상황에 대비해보았습니다.
우리는 공평하게 오직 하나의 몸뚱이만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가져오는 고통은 오직 나만 감내하는 성질의 시련입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얕은 조언과 우울한 위로를 건넬 수밖에요. 결국 내 몸속에 들어가는 음식을 완전히 바꾸고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 인터넷과 도서관을 누비며 분투하는 노력은 저의 것이었지요.
명상을 시작하여 마음을 다듬고 있습니다. 저녁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6시에 일어나는 생체 리듬을 만드는 노력도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밀가루가 금지되고 카페인 섭취가 어려워져 커피와 초콜릿에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낙이 없어진 듯싶었는데 막상 디저트와 카페인이 제 행복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식습관과 생활 방식을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앞으로 남은 70년의 인생의 건강 플랜을 그려봅니다.
삶이 가져오는 시련과 고통에 우리는 어떤 태도로 덤비고 있나요?
위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고 있을 무렵 제 머리를 스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82세에 유 퀴즈에 나와 물류 스타트업에 들어간 이야기
유 퀴즈 언더 블록에 나와 유명해진 지하철 택배원 조용문 님을 아시나요. 조용문 님이 물류 스타트업 '두 핸즈(DOHANDS)에 입사하셨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두핸즈는 당일 주문 당일 출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필먼트 회사입니다. 용문 님은 입사 전 어르신 무료 교통카드로 지하철을 이용해 하루에 3~4건의 물건을 배송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해 빠르게 택배일을 하시는 용문님의 업무와 당일 배송 풀필먼트 서비스를 하는 두핸즈의 만남은 완벽해 보입니다. 용문님은 물품 운영실에서 일하며 직원들이 사용하는 물품을 관리합니다. 모두 용문님이 할 일을 결정하고 시간을 안배하여 근무를 한다고 합니다.
용문님은 퇴직 후에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업에 실패한 후에 불면증에 시달렸고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면제 부작용이 찾아왔습니다. 용문님은 이전 10년의 기억을 한동안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매일 일기를 써두었다면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으로 블로그에 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용문님은 택배 일지를 네이버 블로그에 기록하였고 유 퀴즈와 물류 스타트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70세에도 매일 수영을 하는 그녀
이전 51년생 제 룸메이트 할머니도 생각이 났어요. 70세 할머니라고 들었을 때 제가 생각한 집주인의 모습은 힘이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유일한 취미는 집에서 TV를 보는 것이고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분이라고 혼자 추측했습니다.
실제로 만난 70세 토끼띠 할머니는 예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등이 조금 굽으시긴 했지만 아주 건강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수영을 하러 집을 나섭니다. 수영을 한지는 10년이 되셨습니다. 60세에 수영을 시작하였지만 평생 수영을 한 사람처럼 수영을 합니다. 오후부터 밤 9시까지는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 1시간에 만 이천 원 시급입니다. 한 아이가 초등학교생이 될 때까지 5년 동안 꾸준히 일을 했습니다. 남편 없이 삶을 살아가게 된 할머니는 자기 한 몸 돌보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십니다.
할머니는 30평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보유 중이신데 저는 혹시 주택 연금으로 가지고 계신지 여쭤봤더니 반색을 하시며 답하십니다. "내가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주택 연금 필요 없어. 나중에 거동이 힘들어지면 몰라도" 건강한 제 룸메이트에게도 20년 전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고등학생일 무렵 남편 분이 보증을 섰는데 돈을 갚으라는 압박이 직장에게까지 들어오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고통은 생각지도 못하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나 봅니다. 용문님의 기억상실증과 70세 토끼띠 할머니의 가족 상실. 그리고 저의 자가면역이상까지. 빅터 프랭크는 각자의 인생은 창의적이라고 했는데 그건 각자가 가지는 고통의 다채로움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바다라는 삶을 헤엄치고 있구나라고요. 깊고 넓은 바다인만큼 시련과 고통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그만큼 우리의 가능성도 넓고 깊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빅터 프랭크가 남긴 따뜻한 위로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입니다.
자 유영해볼까요. 용문님과 할머니처럼 100세까지 이 깊고 넓은 바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