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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Jeon May 12. 2024

패스트 팔로워 조직은 항상 두렵다.

외부에서 명분을 찾는 조직에서 혁신은 먼 이야기


중국 App UI가 지저분한 이유

핸드폰에 설치되어 있는 아무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애플리케이션을 켜보자.  중국 앱 내에 번잡하고 지저분한 UI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답답할 거다. 메인 페이지는 끊임없는 스크롤로 이어지고, 상단에는 작은 버튼이 다다닥 나열되어 있다. 단순하게 나열해 둔 수많은 기능들은 유저의 선택을 받지 못하지만 몇 개월째 자리만 차지한 채 방치되어 놓여있다. 중국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 왈, '(하나를 선택할) 용기가 없어서 그래'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과 리스크가 따라온다.  특히 그 선택이 기존에 없던 길을 가는 일이라면 얼마나 두려운가.  현재 나는 패스트 팔로워 테크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 내부에 전략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소재를 개발하는 전담 조직이 없다.  대신에 외부에서 새로운 유행이 나타나면 정말 며칠 만에 카피캣을 만들어내 앱에 업로드한다. 매번 개발 속도에 놀란다. 아무리 AI 기능이라지만 이걸 이렇게 빨리?


회사에서 강조되는 덕목은 외부 경쟁사 모니터링과 빠른 대응이다.  외국 앱에서 대두하고 있는 기능이 트위터와 틱톡에서 얼마나 많은 알티와 좋아요를 받는지 확인이 되면 개발이 시작된다. (정말 안전하다!) 패스트 팔로워는 닫혀있는 중국 내륙 내에서는 통하는 전략이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다르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한국 유저는 언제나 프런티어를 쫒는다. 이런 조직 내에서 퍼스트 무버로서 정체성을 가진 직원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접근과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마다, 경쟁사는? 레퍼런스는? 외부에서 명분을 찾을 때마다 나는 당황한다. 이런 조직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는 기존 레퍼런스가 없으므로 영원히 기동(起動)할 수 없다.


그리고 점차 회사 내 소통 방식에 적응한다. 나도 회사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놀랐으나 이내 조직원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레퍼런스를 찾아 전달하기 시작했다.  '輸出' 우리말로 수출인 이 단어는 중국어에서는 외부에서 자원, 정보 등을 내부로 가져온다는 뜻의 좀 더 큰 동사로 쓰인다. 최근 회의에서 많이 쓰는 단어 중에 하나일 거다. 중국 조직에서 내부에서 분출하지 못하는 창의성을 외부에서 목마르게 갈구하고 있다.  두려움과 자신감 부족에서 기이하는 조직 문화다.  선진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하고 선도해야 한다는 내 주장은 항상 동료들의 힘 빠진 목소리에 반박되는데 '우리는 아직 그런 역량이 없어. 우리는 아직 부족해'라는 말을 진짜 한다. 한 건물 전체를 직원으로 가득 채우고 IPO까지 한 큰 회사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같은 카테고리에서 경쟁하는 대부분의 앱은 직원이 10명도 안될 터이다.


두려워하는 직원, 서서히 죽어가는 기업

패스트 팔로워는 안전하다. 이미 검증된 소재와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해당 프로젝트에 내부 자원을 쓰는 일은 조직에서 비난을 하지 않는다.  중국 직원들은 항상 두려워한다.  이전 회사에서는 정부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의 화두여서 직원들이 매번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일을 했다.  정부에서 벼락같은 통지가 내려오면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났다. 모난 돌이 정을 받는다, 앞서가는 자가 리스크를 지고 비난을 받는다,라는 조직 문화는 중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큰 장애임에 틀림없다.  


한국 스타트업이 쉽게 비난받는 부분도 혁신성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서비스를 국내용으로 바꾸어 론칭하는 행위가 대부분이다. 같은 서비스라도 한국회사가 운영하는 로컬 서비스를 유독 좋아하는 한국 유저에게 상당 부분 통한다. 다만 해외 시장으로 방향을 튼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조직이 자원을 쓰는 방향과 전략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으면 영원히 국내용 서비스, 아류 서비스로 남는다.  다만 한국과 중국 기업을 모두 경험한 나에게 묻는다면 그럼에도 한국 기업이 훨씬 능동적이며 창의적이라 말할 수 있다.


중국 회사가 앞세울 수 있는 건 속도다.  회사 메신저는 저녁 9시, 10시까지도 새로운 기능이 업로드되었다는 이야기로 뜨겁다.  여기서 속도란 건, 어제 출시한 경쟁사 기능을 오늘 저녁이면 완성되는 수준의 가장 빠른 속도다.  카피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며, (특히 앱 서비스라는 필드에서) 저작권도 큰 문제가 되지 않기에 밀고 들어오는 속도는 정말 빠르다. 이게 중국이 중진국으로서 에너지를 가지는 포인트다.  그야말로 중국은 규모가 어마어마한 거대한 패스트 팔로워라서 종종 패스트 무버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기도 한다.  다만 현재 깊숙이 자리 잡은 안전주의 문화는 혁신을 두려워하게 한다.


조직 문화가 기업을 서서히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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