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우영우에 대해서 조금 말을 보태어보고 싶어졌다.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에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좀 더 거리를 두고 차분해진 다음에 정리하고 싶어서 일부러 다른 드라마를 보고 다른 일에 몰두했다. 그 와중에 코로나 격리라는 ‘일’이 생기고...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자는 생각과 개인적 사정으로 더 깊이 느끼는 것들을 써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서로 부딪혔다. 우선 드라마는 자본이 투입된 상품이라는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졌든지 간에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그런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매끄럽게 매만져졌을 것이다. 깎여 나가는 곳에 아쉬운 부분들을 채울 이야기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방영된(~5화)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어색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설명적인 대사를 넣은 부분이었다. 아스퍼거에 대해 내용이었다. 고기능 자폐에 아스퍼거라는 진단명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자폐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 중 한 명인 한스 아스퍼거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나치에 부역한 우생학자였다. 인간을 살 가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구분하던 사람의 이름을 자폐의 한 병명으로 붙이는 아이러니에 대해 지적한다. 어떤 진단명은 해방이기도 하고 어떤 진단명은 낙인이기도 하다. 과연 아스퍼거 본인은 자기의 이름을 딴 병명을 지닌 사람을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 아닐까.
드라마는 귀엽고 놀라운 능력이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내세워 자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고 좀 더 관심을 가져서 주변에 자폐 스펙트럼의 아이들/사람들을 보고 피하는 대신 유연하고 포용력 있게 다가가는 방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런 ‘대의’와 낙관적인 시선으로 둥글게 그려낸 이야기에 조심스럽게 어떤 엣지를 심어놓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귀엽고’ ‘흥미롭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기 위해 많은 것들을 보고 조사하고, 아픔을 봤노라고.
나는 더 이상 보는 것이 편하지 않아서 그만 보겠지만, 다들 각자의 이해와 오해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조금 전에도 페친의 담벼락에서 이상한 댓글을 보았다. 여자 페친이 사진을 올리면 저장한다고 말하는 이상한 변태가 있다는 고발성의 글에 어떤 이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요즘 이상한 사람이 많아요.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 자폐스펙트럼의 특징이죠?”라고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저 말이 무서운 오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