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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Sage Jun 23. 2022

북리뷰 : 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

더 넓게, 더 깊게 청소년의 마음속으로

#Sage의책갈피


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

김선희 지음

김영사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냥 놔두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면서 존중하고 적절하게 살짝 끌어주는 방법. 부모로서는  시도해볼  하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이상적이지 않을까 회의적인 시선으로  수도 있을  같다.  책은 꿋꿋하게 이런 교육관을 믿고 실천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중고등학교 교사로서 학부모와 동료 교사의 얼마나 거센 반발과 저항을 마주해야 할는지. 선희샘은 이런 역풍을 정의의 이름으로 맞서고, 독선과 고집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취지향 시대의 쫓기고 불안한 학부모와 동료 교사의 입장도 다면적으로 살펴보고 토닥이며 자분자분 이야기를 펼친다. 이럴 줄은 알았지만 읽으면서 새삼 뭉클하고 존경스러웠다. 책에 나누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인덱스 스티커를 아주 더덕더덕 정신 사나울 정도로 붙였다.     


부드럽고 다정한 글을 받치고 있는 든든한 경험의 힘을 느꼈다. 치열하게 믿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고 노력은 도를 닦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사춘기 아이의 곁에 있다면 그의 황홀한 인생 향연에 합류할 티켓을 받은 것이다. ‘그냥요’ ‘잘 모르겠는데요’ ‘딱히요’로 대표되는, 사람 꽃봉오리 3종 세트에 담긴 마음을 궁금해하며 적정한 관심과 기다림으로 지켜보길 바란다.(p.178) 사춘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나 선생님의 속 터지는 마음을 이렇게 순화하고 승화시켜 표현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깊이 공감하며 읽었던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학폭위와 관련된 두 이야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 자신의 학창 시절이나 아이의 학교생활의 개인적인 공감을 뛰어넘는, 인간에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규태와 영천이는 중학교 1학년이다.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인기 많은 규태, 영천이는 1학기 중반에 전학을 온 몸집이 작고 말수도 적은 조용한 아이었다. 어느 날 규태는 영문도 모르고 영천이가 때렸다고 학폭위에 신고를 한다. 왜 그랬을까? 선희샘은 이 사건의 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규태는 전학 온 친구와 친해지려고 지속적으로 장난을 걸어왔고, 영천이는 이에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이었다. 어느 날 규태가 다른 친구에게 던진 지우개를 맞은 영천이는 오해하고 분개해서 규태를 때리고야 만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학폭위가 열리면 영천이에게 불리할 텐데 영천이는 자기가 더 큰 벌을 받더라도 학폭으로 다루어달라고 말했다. 규태의 잘못이 10퍼센트에 불과할지라도 그 잘못을 묻고 싶다고 말이다. 선희샘은 규태와 영천이를 모아 왜 불리한데도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꺼내어 나누게 했다.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아이들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 사건을 원만하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반에서 또 다른 학폭 사건이 벌어졌다. 성후라는 힘 좀 쓰는 아이가 다수의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도중에 알게 된 사실은 성후의 폭력을 피한 아이들이 셋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 세 명은 학급 내의 영향력이 큰 반장, 학업과 신체발달이 뛰어난 규태, 그리고 규태의 괴롭힘을 정면으로 돌파했던 영천이었다. 영천이를 향한 규태의 괴롭힘은 주로 쉬는 시간에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으므로 해결 과정도 반에서 공유된 것이다.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상대의 경계의식에 민감하다. 그만큼 자기 존엄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에게는 결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p.119-p.120) 교사로서 부당한 요구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 때에 영천이의 도도함을 마음속 등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찡하게 와닿았다.    

  

요즘 참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에 이 책이 위로가 되어주었다. 책을 덮는 마지막에 내 마음의 등대가 될 문장들이 있어서 옮긴다.      


아직 어려도, 많이 부족해도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고 싶어 한다. (중략) 그렇다고 이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일순간에 아이의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아이를 기르는 사람의 책임감이 함께하는 순간의 정겨움을 압도할 때 우리는 적정 사랑의 방법을 잃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오로지 아이의 마음을 묻고 그 순간에 집중하여 아이가 원하는 적정선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지켜주는 수밖에 없다. 아이의 행동을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직면한 마음을 물어 끝까지 들은 뒤, ‘아, 그렇구나’라는 쉼표를 찍는 순간, 바로 기적같이 끈끈한 연대의 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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