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장, 10년 차 워킹맘의 생존 노하우 Episode 2
직장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즐거움의 종류가 있다면, 많은 직장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진급'일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도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본능적인 '인정 욕구'가 있으며, 회사 생활에서의 '인정'은 곧 진급, 승진을 의미할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회사라면 1년 동안 업무 한 내용들에 대해 연초, 또는 연말에 평가를 내리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진급 여부를 결정하지만 매년 승진되진 않기 때문에 직장인에게 '승진'이란 '3~5년'에 이르는 장기 프로젝트인 것이다.
한 회사에 다닌 지 10년이 넘은 나는 첫째를 낳고 복직했던 다음 해, 즉 6년 차쯤 한 번의 승진이 있었고, 둘째를 낳고 다시 복직하여 1년을 다닌 상태라 승진에 대한 목마름이 올 시기가 올해였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이글거려 경제서를 읽는 독서모임 리더도 자처하고, 두 아이의 엄마 노릇도 잘 해내고 싶었지만, 나에게 가장 큰 '인정 욕구'를 채워주는 것은 아무래도 본업인 직장인의 영역이 제일 컸었다. 주어진 임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열과 성의를 다했으며, 대충 하자는 그릇(?)도 안되기 때문에 책임감 있게 업무에 임하고자 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높은 직급을 가진 동료의 고백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자기 전까지 메일함을 10번은 넘게 보고, 메신저도 20번은 들어가는 것 같아
그렇다. 회사가 나에게 더 많은 연봉과 직급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더 많은 책임과 의사결정권을 쥐어준다는 뜻이었고 그제야 나는 '승진'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남들과 동일한 24시간의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안에서 엄마, 딸, 회사원, 독서모임 리더, 아내까지 총 5개의 역할을 어떻게든 쪼개서 수행해나가야 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버거웠다. 하지만 승진을 하게 되어 회사원의 역할에 대한 비중이 올라가면 다른 역할들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야 하고 그러면 내 삶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은 아닐지, 다른 누군가 (남편 혹은 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닐지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여러 개의 역할 중에 특출 난 캐릭터를 키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인정 욕구'가 채워져 자존감과 자신감이 올라가 더 넓고 커다란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선택하고 싶은 길이었다. 학창 시절 수학 시간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가 전반적으로 봤을 때,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수학 시간에 충실하게 수업을 듣고, 그 시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었다. 동일한 원리로 내가 가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방법, 좀 더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고 일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최대한 집중하고 성과를 내고 싶었다. 이를테면 제5차 세계대전쯤 될법한 승진을 하고 싶은 캐릭터와 승진을 하고 싶지 않은 캐릭터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의 승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전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려운데,
승진이 선택이 된다면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을 고민을 나눴던 동료에게 하고 난 그날 밤, 야근 때문에 늦는 남편을 대신해 아이들을 씻기고 난 화장실에서 갑자기 내가 했던 멘트가 생각나 한참을 울었다. 몇 년이나 연봉에 대한 불만으로 승진만을 기다려왔던 나인데, 막상 때가 되니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승진을 꺼리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현실에 대한 답답함 등 여러 가지가 나를 흔들어 놓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현실'이라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나를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지 혼란스럽고 답답했다.
그리고 한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승진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고, 일에만 푹 빠져 지냈는데 브런치에 대한 글감을 생각하다 보니 이 주제가 떠올랐고, 생각이 정리되었음을 느꼈다. 회사에 많은 직급의 단계가 있을 테지만 단계를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그 직급을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기존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물론 더 많은 의사결정의 범위가 주어지기 때문에 접근은 신중해야 하고 더 많은 집중력과 통찰력이 요구될 것이다. 무조건 시간을 늘리지 않더라도 이 직급을 잘 해낼 수 있는 '치트키'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법, 위아래 동료들과 오해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법, 반드시 성과를 내는 Task 관리법 등으로 나만의 치트키를 찾아 공부하고 동일한 시간을 투자하여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가 찾은 자연스럽게 얻은 결론이었다.
이 '치트키'를 찾은 워킹맘은 승진의 대열에 올라 넘쳐나는 자존감을 뿜뿜 거리며 돌아다닐 수도 있고, 다른 캐릭터의 비중을 더 높게 생각한 워킹맘도 본인이 생각한 '자존감'이 솟구쳐 나오는 스폿을 찾아 자신만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정답은 없지만, 자신의 자존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나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자, 이제 당신의 자존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