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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워킹맘 손엠마 Nov 13. 2020

누군가 공과 사의 경계를 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한 직장, 10년 차 워킹맘의 생존 노하우 Episode 1  

일찍 퇴근하고 애 보러 가면
뭐가 나와요?



12월 얼마나 추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겨울날,

첫째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지하철로 가는 퇴근길, 나는 엉엉 소리를 내며 아이같이 펑펑 울었다. 나보다 어린 후배인데 나는 왜 그 자리에서 웃기만 하고 그녀에게 아무 말도 반박하지 못했을까?


네가 애는 낳아봤니?

애를 키우면 뭐가 나오는지 겪어는 봤니?

너희 어머님도 널 이렇게 키워서 뭘 얻으셨니?


지금이야 굉장히 교양 있고 차분하고 품위 있는 어투로 그녀에게 독침 같은 한방을 날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바보같이 왜 듣고만 있었는지 아직도 그 날의 공기와 순간을 생각하면 답답함이 몰려온다. 그 시절 나는 한 회사에 7년 동안 쭉 다니고 있는 대리였고, 그때는 무언가 해야 할 업무가 잔뜩 쌓인 상황에서 나는 1,2시간으로 끝날 일이 아니니 퇴근하고 내일 하자는 입장이었고,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하고 가자는 입장이었다. 


물론 이런 정황만 본다면 나는 회사와 개인의 경계가 굉장히 뚜렷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고 (이게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니 오해 마시길) , 그녀는 회사에 좀 더 충성스러운 직원으로 비칠 수도 있다. 차라리 만약 그녀의 캐릭터가 로열티가 충만한 직원이었다면 나는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좀 더 진정성 있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행실은 그렇지 않았기에 나에게는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는, 공을 위해 사를 건드는 마상을 입힌 것이었다. 성희롱도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인정되는 시대인데, 나는 왜 나의 불편함과 그녀의 '선 넘음'을 표현하지 못한 것일까. 




그렇게 반년쯤이 지나고 나는 12월에 맡았던 그 순간의 공기를 다시 맛보게 되었다. 


나 : ㅇㅇ님, 이거 데이터 A, B 도 고려해야 되는데 그렇게 뽑힌 거 맞아요?


그녀 : ㅇㅇ, 그렇게뽑은거임


우리 회사는 입사 후 5년 차쯤부터 '닉네임'을 부르는 호칭을 사용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누군가를 엠마님, 제니퍼 님, 스티브 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게다가 워낙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후배라는 개념이 없어 되도록 모두에게 동일한 호칭 방식과 경어를 사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받은 답장은 모음이 빠지고 혼자 외롭게 남아있는 'ㅇ' 두 개와 그녀의 좁은 아량을 보여주려는 듯 띄어쓰기 하나 없는 단답형에 가까운 명사형 답변이었다. 


고민스러웠다. 지금 당장 그녀에게 전화해서 '야 이 싸가지야, 맨날 술 먹고 다니더니 개념은 술이랑 같이 말아먹었냐?'라고 할지, 그냥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지 정말 고민스러웠다. 우리 집은 가족 전체가 A형일 정도로 트리플 A형인 데다가 나는 본래 심성이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해 가슴속에 차곡차곡 돈 모으듯이 쌓아왔는데 남에게는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더 이상 그녀가 나와의 수평적인 관계를 일방적으로 망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해야 나의 회사 생활에 다음 퀘스트가 열릴 것만 같았다. 메신저를 받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감정을 빼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마음을 먹고 드디어 전화를 걸었다. 


"ㅇㅇ님, 우리 회사에는 수평적 조직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고 있어서 저도 ㅇㅇ님과 이야기할 때, 최대한 경어를 쓰고 님 호칭을 붙여드리고 있는데요. 제가 후배도 아닌데 왜 룰을 지키시지 않는 거죠? 굉장히 불쾌하고 불편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ㅇㅇ님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지만 표현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건 엠마님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 것 같은데요."

"네,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분들은 ㅇㅇ님보다 경력이 짧아서 표현을 못하는 것이지 불편함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분들의 불편함은 표현되지 않았기에 제가 명확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적어도 저는 지금 불쾌함을 말씀드렸으니 앞으로는 선을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이 대화를 끝으로 그녀와는 영영 멀어졌다. 가장 존경하는 회사 멘토는 '사람은 사람이고, 일은 일이다'며 그녀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완전, 그것도 아주 많이, 개인적인 감정이 남아있었다. 업무적으로 객관적인 피드백을 줬다거나, 건설적인 토론이 오갔다면 그녀를 나의 파트너로 인정했겠지만,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놓고 일하는 워킹맘의 최대 약점을 건드렸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었기 때문에 나도 그녀를 나의 동료로 존중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회사를 떠났고, 나는 그 뒤로도 3년을 더 다녀 한 회사에 10년째 다니고 있는 워킹맘이 되었다. 누가 어디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승자가 되었다는 뜻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그 날의 경험 덕분에 나는 '불편함'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나 자신을 외부로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강한 자기애와 더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선을 넘은 그녀 덕분에 나도 나를 지킬 수 없던 과거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현재로 선을 넘어왔으니 이제는 개인적인 감정을 없애고 그녀를 한 명의 'Human being'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주려고 살짝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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