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려볼까

카파도키아 ATV 투어로 찾은 작은 용기

by Emmett

돌아오고 보니 조금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ATV 픽업까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흙먼지가 많은 곳을 달리는 투어라 더러워져도 될 만한 옷으로 갈아입고,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그래서 여행자 보험도 고급형으로 들었다고 해야 할까.






약 3년 전, 가평에서 즉흥적으로 ATV를 탄 적이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업체에서 다듬어둔 길을 달리거나 산길을 오르내리는 체험이었는데, 산길을 오르는 중 큰 웅덩이가 있었다. 그 웅덩이를 지날 때 ATV에서 무언가가 '툭'하고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렸다. 그렇게 바로 가파른 내리막을 마주했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니 내리막 뒤엔 바로 좌회전해야 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다는 것. 아마 웅덩이를 지날 때 브레이크 장치의 어떤 부분이 손상된 것 같았다. 좌회전을 하기 위해 내리막길 후 바로 핸들을 틀었다간 ATV와 함께 옆으로 넘어져 깔리거나 크게 다칠 것 같았다. 하지만 좌회전을 하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가야 했다. 이건 더 크게 다치거나 더 큰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동안 판단이 필요했다. 좌회전도 직진도 둘 다 큰 사고가 될 것이기에, 그 순간 눈에 띈 나무를 들이받기로 결심했다.



“콰앙!”



그러나 이 판단도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속력이 생각보다 훨씬 붙어 있었던 탓에 충격이 온몸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안전벨트도 없었던지라 나무를 들이받자마자 그대로 튕겨져 나와 다른 나무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순간 뭐라도 붙잡으려 했었는지, 왼쪽 손바닥은 나무껍질에 쓸리고 검지 손가락이 잘 구부려지지 않았다. 오른손과 팔은 나뭇가지에 찔려 피가 났다. 병원을 가야 할 만큼 다친 건 아니었지만, 몸과 마음이 크게 놀라 ATV는 중단하고 돌아왔다. 사실 거기가 마지막 코스였다고 한다.


업체로 돌아오니 역시나 브레이크 부품이 깨져있었고, 처음엔 이를 물어내라고 하다가 내 상태를 보고는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그 뒤에도 ATV를 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전동 킥보드 같은 개인용 이동장치 역시 타지 않았다. 그런데 카파도키아 여행을 준비하던 중, 이 평야만큼은 한번 직접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전까지도 취소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벌룬투어에서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왔다고 생각하니, 이번은 해볼 수 있겠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ATV 투어가 시작됐다.


ATV 투어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대가 가장 인기라, 내가 신청한 시간엔 튀르키예인 커플과 나, 이렇게 셋 뿐이었다. 헬멧의 색상을 고를 수 있었는데, 내가 빨간색을 집어드니 커플도 웃으며 "오늘 모두 빨간색으로 하자!"며, 빨간 헬멧을 쓰고서 가이드를 따라나섰다. 가이드의 빨간 패딩과 빨간 ATV까지 어우러져 우리는 이상하게 한 팀처럼 보이기도 했다.

IMG_2806.heic 빨간색 ATV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카파도키아의 ATV투어는 흙먼지가 날릴 뿐,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들른 명소에서는 수많은 투어객이 오가고 있었고, 너나 나나 다들 ATV 무리가 있었다. 나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는지 휴대폰을 꺼내 달리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커플은 한 시간을 신청해 먼저 돌아갔고, 이제 나와 가이드뿐이다. 처음엔 조심히 꺼내던 휴대폰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꽤 과감해졌음을 느꼈다. 휴대폰으로 촬영하다가도 카파도키아의 이 땅을, 하늘을, 바람을 모두 느끼고 눈에 담고 싶어 몇 번이고 멈춰 서거나, 천천히 운행하거나, 미친 듯이 질주를 했다.


IMG_4471.PNG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꽤 오랜 시간 동안 남아 있던 두려움이었는데, 단 한 시간 반 만에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경험도 이런 작고 조용한 용기를 하나씩 되찾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숙소. 나는 열기구와 ATV를 뒤로하고, 여정 36시간 만에 단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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