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시린 새벽
2015년 1월 말. 동생이 부사관으로 입대한 뒤의 일이다. 입대 후 얼마 지나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동생의 물건과 함께 곱게 접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상자에는 집에서 늘 쓰던 섬유유연제 향이 가득했다.
편지를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동생이 그린 한티 그림이었다. 편지에도 한티에 대한 이야기가 1/3을 차지했다. 누가 집사 아니랄까, 괜히 웃음이 났다.
‘누워있으면 한티 올라올 거 같고, 여기 고양이들 볼 때마다 한티 보고 싶어.'
'한티는 잘 지내고 있지? 진짜 주말에 이불속에서 한티랑 누워있고 싶음ㅋㅋ'
'한티한테도 잘 지내고 있으라 해!'
서울에서 지내다 한티를 데리고 본가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동생은 곧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가족들 모두가 출근하고 나면 동생은 줄곧 집에서 한티와 지냈다. 물론 입대 전이기에 친구들과 마음껏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집에 있을 땐 동생은 꾸준히 한티의 식사며, 화장실이며, 놀이며, 혼자서 모두 도맡아 해왔다. 잠깐 낮잠을 잘 때면 한티가 항상 옆이나 배 위에 올라와 있었고, 게임을 할 때도 무릎 위에 올라와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들을 한티와 보내다 군에 들어갔기에, 한티가 가장 그리운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도 동생은 이야기한다. 한티는 정말 남동생 같은 존재라고, 그렇게 외로웠던 시간을 한티 덕에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동생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진짜 갑자기 쓰러졌어.”
“누나, 아.. 미치겠다. 나 오늘 당직이거든.”
“아….”
“그래서 말인데 나 기다려주면 안 돼? 누나랑 한티한테 진짜 미안한데 한티, 형아 좀 기다려 달라고. 나 내일 쉰단 말이야. 당직 정리하자마자 갈게. 응?”
“그때까지 한티 괜찮겠지…”
옆에서 통화를 듣던 친구는 얼음 위에 아이를 두면 24시간 정도는 괜찮다고 하니, 동생을 기다려 주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근무 마치고 와. 한티도 너 못 보고 가면 서운하겠다.”
“응, 나 교대하자마자 갈게. 계속 연락 줘.”
한티를 곁에 두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주변에서 한티를 예뻐해 주던 지인들에게 하나 둘 소식을 전했다. 회사에도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휴가를 신청했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 당황했고, 곧바로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출근을 해야 했던 친구들은 장례 때 다시 연락 달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하나 둘 돌아갔다. 그렇게 한티와 둘이서 남게 되었다.
한티는 여전히 눈을 감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두 눈꺼풀 위에 엄지를 올리고 남은 손가락으로 얼굴을 받쳐 주었다. 따뜻하게 만들어주면 감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참이고 한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눈을 뜨고 있는 한티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지만 초점이 없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나 만졌을까. 한티의 눈꺼풀을 엄지로 쓸어내려봤다. 감겼다. 눈이라도 감겨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티 옆에 내가 누울 곳을 만들었다. 눈을 감은 한티에게 손을 올려 토닥이며, 너를 만난 7년 간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너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가버려서 얼마나 미운지. 널 이렇게 가버리게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화가 나는지. 지금이 한티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걸 수 있는 순간인 것 같아 모든 이야길 쏟아냈다. 한티는 늘 그랬듯 다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차가운 곳 위에 눕혀둬 마음이 아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어쩌면 미련할지도 모를 방법이 생각났다. 얼음과 함께 한티를 껴안고 있어야겠다. 얼음 몇 봉지를 팔베개하듯 팔 위에 올려 쌓고 그 위로 한티를 옮겼다. 난 얼음과 한티를 껴안고 다시 한티에게 이야길 했다. 그렇게 온몸이 시린 새벽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