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동행

편지가 흘러나온 낮

by Emmett

그렇게 동생은 계단을 올라 한티와 마주 했다.



“한티야, 형 왔어. 응? 한티야.”



이름을 부르면 줄곧 대답을 하곤 했던 한티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지만, 동생은 한티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한티의 7년 중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나보다 더 한티를 챙겨 온 동생에게도 한티와의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온 메시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아이의 이름과 생일, 그리고 장례를 위해 아이의 사진을 여러 장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보다, 사진을 골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나 테라스에 있을 테니까, 한티랑 이야기 많이 하고 있어.”



아무래도 동생은 내 이야길 못 들은 듯했다. 동생은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로 한티를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테라스로 나왔다. 출근을 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과 골목마다 다니는 자동차들이 보였다. 평소였다면 나도 저들처럼 맞이했을 평범한 아침 풍경이었고, 오늘의 나는 그러지 못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진첩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사진 찍어준 게 언제더라. 사흘 전 밤에 찍은 사진이 한티의 마지막 사진이었다. 사진을 확대해 한참이고 바라보다, 사진을 더 찍어줄 걸 하는 생각으로 나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지만 사진이 있어야 한티를 보내줄 수 있다 생각하며 다시 더 과거의 사진첩으로 옮겨 갔다.


어느 대학생이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모두 돌볼 수 없어 분양하고 있던 검은 아기 고양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등장하는 스스와타리와 똑 닮은 모습을 하고 있던 이 검은 아기 고양이는, 사진첩 속에서도 지나간 시간만큼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게 7년의 시간 동안 내 사진첩을 온통 까맣게 물들여갔던 한티는 천진난만한 어린 고양이였다가, 버티와 로티가 오고서부턴 든든한 첫째가 되었고, 항상 사람들의 곁에서 있고 싶어 하고 사랑받는 어른 고양이로 지내고 있었다.


어떤 사진으로 하는 게 좋을까.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고르는 게 아니라 장례식에 쓸 사진을 고르게 되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골라야만 했다. 고민하다 한티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있던 사진들과 내 배 위에 올라와 있는 사진까지 골라 장례식장에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 이름은 한티입니다.
생일은 2월 14일로 알고 있는데, 저와는 2014년 4월 18일에 처음 만났고 2021년 3월 10일 어젯밤 떠났습니다.
너무 늦지 않은 오후에 방문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한 지인들의 연락에 답을 하나씩 하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동생은 조금은 진정된 듯 보였다.



“이제 보내주러 갈까...?”



동생은 끄덕였고, 나는 한티가 좋아하던 파란 블랭킷을 꺼내 한티를 감싸 안았다. 감싸 안아보니 한티가 딱딱해져 있었다. 그 사실이 온몸으로 번졌다. 한티를 안고서 작은 방의 테이핑을 뗐다. 버티와 로티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한티에게 인사할 수 있도록 몸을 굽혀 한티를 보여주었다. 갑작스레 낯선 모습을 한 한티에게 공격을 했던 버티도 진정이 되었는지 한티의 냄새를 천천히 맡았고, 로티는 한티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한티가 지내던 공간과 한티도 인사할 수 있도록 한 바퀴씩 천천히 돌았다. 나와 아이들이 함께 잠을 청하던 작은 방을 지나, 놀이를 하거나 낮잠을 자던 큰 방도, 식사와 간식을 먹고 뛰놀던 거실과 계단, 왜인지 항상 쫓아 들어와 날 기다리고 있던 화장실, 마지막으로 무척 궁금해 한 공간이지만 위험해서 못 나가게 하던 테라스까지. 그렇게 한티가 숨 쉬던 공간을 돌았다. 남아 있는 한티의 공기가, 이제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집안을 돌고 나서 이동장도 없이 한티를 안고 동생의 차로 향했다. 장례식장의 위치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출발하려던 순간이던가. 음악이 하나 흘러나왔다.


김광진의 ‘편지’였다. 우연히도, 아니 어쩌면 꼭 한티가 고른 곡 같았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 가오.


나와 동생은 말없이 흘러나온 편지를 들었다. 그 편지를 들으며, 나는 한티를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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