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웃음을 보여줘!

어느 노부부와 함께한 카파도키아 지프투어

by Emmett

그렇게 얼마나 잠이 들었던가. 화단의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며 호텔 안팎을 헤매는 꿈에서, 휴대폰 알림 소리 덕분에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지프투어 가이드의 연락이 와있었다. 이미 픽업시간이 지나있었고, 하마터면 픽업차량을 놓칠 뻔했다.


다급히 짐을 챙겨 나가 보니 지프차량과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내가 정말 혼자 온 건지 재차 확인했다. 문제가 되나 싶었지만, 혼자 이곳에 여행 오는 사람이 드물다 보니 왜 혼자 여행을 하는지 물었다. 그저 열기구투어와 고양이가 보고 싶어 이곳에 온 거라, 혼자 맘껏 즐기려고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 왜 두 명을 예약했는지 궁금해했다. 일행이 있었는데 싸워서 혼자 온 거 아니냐는 농담도 섞어서. 그랬다. 사실 시스템상 지프투어는 두 명부터 예약이 가능했다. 아마 한 팀 당 지프차량 한 대로 배정되는 시스템이어서 그런 거 같았다. 지프투어를 예약할 때도 한 명의 투어비용치고 비쌌지만 지프로 오프로드를 달리는 경험을 또 어디서 해보겠나 하는 생각에 두 명분으로 예약하게 된 투어였다.


가이드는 조금 고민하더니 잠깐 통화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사실 나와 가이드 둘이서 움직여도 됐지만, 앞서 ATV투어도 가이드와 단 둘이서 한 시간 동안 있었는데, 조금 어색했던 게 떠올랐다. 무엇보다 언어의 한계가 있다 보니 가이드와 둘이서 어떻게 세 시간을 보내지 하는 걱정스러움도 있었다. 가이드는 통화를 끝내고서 혹시 괜찮다면 다른 팀과 합류를 해도 되는지 물었다. 나는 냉큼 그러자고 했다.






어느 길목에 지프를 대고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차량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나타냈다. 차량은 스스로 움직여 왔다기보다, 내리막길을 따라 겨우 굴러 내려온 모습이었다. 남성 두 명이 서둘러 내려 차량을 막아 세우고, 바퀴에 돌을 괴어 굴러가지 않게 했다. 그리고 그 차량에선 노부부와 두 명의 남성이 더 내렸다.



"차량이 고장 났어요!"


"그럼 이제 저 사람들은 어떻게 돌아가요?"


"돌아가지 않아요. 이곳에서 부부를 기다릴 거예요."



가이드는 노부부를 데려다준 남성들과 농담을 주고받았고, 노부부는 나에게 밝은 웃음과 함께 손짓으로 인사 후 내 뒷자리에 올라탔다. 노부부의 등장은 시골을 배경으로 한 어떤 영화의 장면을 본 것 같았다. 고장 났지만 겨우 굴러온 차량, 그렇게 도착한 노부부, 그리고 고장 난 차와 기다리겠다는 남성들(아마 고쳐서 돌아갈 테지만). 그렇게 지프투어가 시작됐다.


IMG_2920.heic 지프투어 시작!



"어디서 왔어요?"


"미국에서 왔어요, 나이도 물어볼 거 같으니 미리 말하면, 이미 80이 넘었어요."



가이드와 노부부가 하는 대화를 듣다가 놀랐다. 여든이 넘었는데 부부가 함께 여행을, 거기에 심하게 흔들리는 차량을 타야 하는 지프투어를 하다니. 나도 여든이 넘어서 저들처럼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노부부는 가이드와 이야기하다 나에게도 물었다.



"전 한국에서 왔어요."


"설마, 북한에서 온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서울에서 왔어요."


"우린 작년에 서울과 제주를 갔다 왔어요. 서울 진짜 멋진 곳이에요! 또 가고 싶다!"



그렇게 가이드와 노부부와 함께 가벼운 대화를 하던 중 노부부는 여생을 여행으로 꽉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또 다른 여행지를 찾아 다시 떠난다고 했다. 가능한 다양한 곳을 가려고 하고, 다양한 것을 하려고 한다고. 그리고 오늘 투어가 끝나고 나면 직접 운전해서 이스탄불까지 넘어간다고 했다.


나는 이스탄불에서 괴레메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차량으로 간다니? 검색해 보니 차량으로 족히 8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는데 8시간이 넘는데 괜찮은지 물으니, 아직 그 정도 운전실력은 된다며 원하면 같이 가도 된다고 했다. 아까 그 차로 가는 건 아니니 안심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시 한번 노부부와 합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영어였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나하나 듣고 이해하려는 배려심을 갖춘 사람들이었고, 중간중간 내려서 둘러본 관광지의 심한 언덕길에서도 '오늘 여기서 죽으면 죽는 거다.'라고 말하며 미끄러져 내려와 웃는 모습도. 노을이 지기 전 지프 천장에 올라가 사진을 찍을 때도 나보다 훨씬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 저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렇게 지프투어도 하고 8시간 운전해서 다른 도시를 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지프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지프를 타고 노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 노을을 구경하고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노을이 질 무렵 가이드는 지프에서 한 번 더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고, 나는 지프의 보닛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부인이 가이드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지프 위의 내게 다가와 이야기했다.



"오늘 내내 보니까 웃질 않고 있어요. 우리에게 그 예쁜 웃음을 보여줘요. 스마일!"



부인의 말에 사실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열기구를 타고 고양이를 잔뜩 볼 수 있단 기대감에 온 이곳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은 것도 맞지만, 그 화단의 고양이 때문인지 그저 어딘가 마음이 무거웠던 건지, 나는 내내 웃지 않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니, 그 사실이 감정으로 밀려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노부부와 가이드의 말에 눈물을 훔치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 한마디에, 오래 머물러 있던 마음의 짐이 내려앉았다.


IMG_4779.JPG 그렇게 웃고서 찍힌 지프 위의 사진


우린 아마 또 한 번의 우연이 있지 않은 이상,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프투어를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노부부는 이스탄불로 출발했겠지? 그럼 나도 오늘 밤을 장식하러 다시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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