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 Out의 고양이

고양이가 머물러도, 떠나도 되는 곳

by Emmett

종일 흙먼지를 뒤집어써 씻고 나와보니 길가는 어둑해져 있었다. 나는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봤다. 감히 완벽한 하루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열기구 투어까지 성공한 상황이라, 카파도키아에서 하려고 한 것들은 오늘 다 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럼 내일 할 일이 없으니, 오늘 밤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겠다.


호텔에서 나와 익숙한 듯 화단으로 가 고양이에게 인사를 했다. 이상하게도 따뜻해 보였다. 부디,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네 몸도 이곳을 떠날 수 있길 바라.


그러고서 무작정 걸었다. 관광지다 보니 어디든 열려있을 거고, 늦게까지 영업할 거란 믿음이었다. 10여분 넘게 번화가를 향해 걸었는데 호박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The Hangout Gastro Pub’이라는 가게였고, 순간 어릴 적 다닌 영어학원에서 ‘Hangman’ 게임을 했던 생각이 났다는 이유로 그 가게에 들어갔다.


IMG_2979.heic 괴레메의 Hang Out


2층에 자리하고 있는 Hang Out은 한국에서 본 술집처럼 조금은 친숙한 분위기였다. 단체손님석도 있고, 보드게임도 있었으며, 심지어 담요도 준비되어 있었다. 혼자 왔다고 하니 어디든 편안한 자릴 고르라 했고, 나는 바깥 구경도 할 겸 테라스로 갔다.


오늘 여행에서 감정의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나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 감자튀김과 맥주를 시켰다. 아쉽게도 감자튀김이 없어 치킨너겟으로 바뀌었지만.


테라스 밖 풍경은 아, 정말 관광도시구나 하는 느낌으로 다양다색의 사람들이, 삶이 오가고 있었다. 치킨너겟과 맥주가 나왔다. 튀르키예의 치킨너겟은 다를까? 아니, 정말 집에서 데운 그런 치킨너겟이었고 나는 그게 무척 좋았다.


건물 사이사이가 넓지 않아서인지 테라스 밖을 내다보던 중 옆 건물에서 고양이 하나가 건너와 테라스 바깥에서 인사하는 진풍경까지. 튀르키예가 처음이지만 이곳이 튀르키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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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치킨너겟, 그리고 테라스 밖의 고양이





맥주 두 병이 넘어갈 무렵, 예상외로 찬 바람 때문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을 찾는데 사장님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화장실을 가르쳐준 뒤 미소를 지었다. 마치 '화장실을 다녀오면 너에게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야' 하는 눈치였고, 볼 일을 마치고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재밌는 얼룩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나를 맞이했다. 아마 녀석이 화장실 주변을 배회하고 있어 사장님이 눈짓으로 알려준 모양이다.



“꼬마야 안녕.”



고양이는 어린 고양이로 보였는데, 내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다리를 휘감고 비볐다. 이제 튀르키예에 온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집에 있는 넷째(이 녀석이 재밌는 얼룩을 가졌다)와 너무 닮아 무척이나 반가웠다.



“저 아이, 여기서 지낸 지 이제 열흘도 안 됐어요.”



사장님이 이야기했다. 고양이를 돌봐준다는 차원의 이야기는 도시인 이스탄불의 이야기이고, 괴레메와 같은 외곽에선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물을 챙겨주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내 영업장 안에 들어왔다고 내쫓거나 해코지하는 분위기 역시 아니라는 설명도 함께 했다.


그게, 전부인 거 아닐까. 어느 나라 고양이들은 그저 길에서 길을 걷는다고 걷어차이기도 하는데, 고양이들은 자기가 있을 수 있는 공간정도만 바랄 뿐인데 말이다.


이곳의 사장님은 돌봐주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제 보니 가게 곳곳에 고양이가 쉴 수 있는 숨숨집이며 밥그릇과 물그릇까지 모두 준비를 해두셨다. 고작 열흘 알게 된 고양이가 가게 안에서도 지낼 수 있도록 이렇게 준비한 것이다. 아마 이 얼룩무늬 고양이 말고 다른 고양이들도 지낼 게 분명했다.


나는 얼룩무늬 고양이를 마음껏 쓰다듬고 나서 테라스의 내 자리로 향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졸졸 쫓아오는 게 아닌가. 무릎을 톡톡 치니 바로 뛰어올라 앉았다. 그러고선 내 얼굴에도 몸에도 본인을 비비며 온갖 애교를 시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장님이 말했다.



“데리고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여기 고양이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러고 싶어요, 정말로... 그런데 집에 고양이가 셋이나 있어요!”


“셋이나 있어요? 어우 넷은 안 되나요?”



처음 온 공간에 단골처럼 사장님과 이야길 하다, 나도 모르게 해외에서 고양이 입양이라는 검색어로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먼 곳에서 한국까지 아이를 데려간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았다. 얼룩무늬 고양이는 금세 내 무릎에서 내려와 다른 손님의 무릎을 노리고 있었다. 아마 집에 고양이가 셋이나 있다는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셋이면 너무 힘들지 않냐는 사장님의 질문이 왔고 고양이는 하나나 둘이나, 둘이나 셋이나 비슷하다고 답하니 사장님은 고양이는 참 재밌는 동물이라며 얼룩무늬 고양이를 익숙한 듯 휘파람으로 불러 식사를 챙기러 갔다. 아무리 봐도 열흘이 아니라 10년을 함께한 모습으로 보였다.


상상하고 있던 혹은 기대했던, 튀르키예에서 고양이가 지내는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Hang Out에서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다시 얼룩무늬 고양이를 불러보니, 녀석이 나에게 왔다. 다시 무릎에 올라와 비비는 녀석을 한참이고 쓰다듬었다.


나 한국 돌아가면 네가 참 많이 생각나겠다. 그래도 여기 사장님들이라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다. 잘 지내! Hang Out의 고양이야. 우리 언젠가 또 보자.


IMG_2999.HEIC Hang Out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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