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로, 그러나 끝나지 않는 소변실수
버티가 우리 집 둘째가 되었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집 온갖 데에 소변을 본다는 것이었다. 모래가 사방으로 튀는 게 싫었던 나는 한티가 어릴 적부터 나무로 만든 펠렛에 용변을 보도록 했다. 그런데 버티는 이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버티는 정말 온갖 곳에 소변을 누었다. 침대와 소파는 기본이었고, 냉장고 위엔 또 어떻게 올라갔는지 냉장고를 덮어둔 천 위에도, 하다못해 거실장을 덮고 있는 천 위에도 소변을 누었다. 가장 최고의 사고는 빨래를 막 끝낸 빨랫감에도 소변을 누었다. 그런 버티의 행동에 가족들은 매일 빨래를 하기 일쑤였고, 결국 백기를 들었다.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할 순 없을 거 같아 결단이 필요했다. 다시 서울로 가자, 그리고 셋이서 살자. 차라리 나만 힘든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스무 살 때부터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다. 본가에는 잠시 지내는 걸로 한티와 함께 오게 된 건데, 버티까지 늘어난 상황에 아이들을 더 잘 케어하기엔 시간과 체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편도 한 시간 사십여분을 이동해 서울로 출근을 하고 나면 이미 기진맥진이었고, 늦은 퇴근시간과 또다시 한 시간 반의 여정을 겪고 집에 도착하면 밤 열 시가 넘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역부족이었다.
물론 아침과 저녁은 집안의 가족들이 아이들을 살뜰히 챙겨주었지만, 여러모로 내가 직접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라 생각했고 출퇴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다시 서울행을 택하게 되었다. 아빠는 특히나 무척 아쉬워하셨지만, 버티의 소변실수를 평생 감당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하셨다.
그러나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서울에서,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 고양이 둘과 지낼 수 있는 매물을 찾는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모아둔 돈도 넉넉지 않았기에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포기해야 하는 조건들이 많아졌다.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은 교통편과 집의 너비, 회사까지의 거리는 편도로 30여분으로 크게 줄어들었지만 환승을 세 번을 해야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그렇게 서울의 한 고시촌에서 5평 남짓한, 작은 방과 거실이 나눠진 그런 집을 겨우 구하게 되었다.
이사를 가게 된 날, 나와 한티 그리고 버티는 아빠의 차에 올라탔고 밤늦게 다니지 말라거나, 끼니는 잘 챙겨 먹으라는 아빠의 당부와 함께 이사까지 마쳤다. 새로운 환경이었지만 이사 온 날부터 한티와 버티는 원래 이곳에 지냈던 마냥 바로 적응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 뒤 장을 보고 돌아왔는데 화장실 앞에 둔 새로 산 발매트에 선명한 소변 자국이 있었다. 역시나, 버티의 소변실수가 시작된 것이다. 발매트라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는데, 버티가 침대로 올라와 소변을 보기 전 바닥을 긁는 행위를 했다. 나는 잽싸게 버티를 들어 올려 거실로 달려 나갔고 버티는 그대로 나를 향해 소변을 발사했다. 이사 오면서 새로 산 침대와 이불을 살릴 수 있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거실의 소변을 닦아냈다.
하지만 버티의 소변실수를 하루 종일 막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있었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이불이며 발매트며 항상 젖어있었다. 결국 이불과 발매트를 여분으로 더 구입해 두었다. 하루는 야근으로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왔는데, 건조대에 널린 이불에도 침대 위의 이불에도 모두 소변을 봐버린 바람에 외투를 꺼내 덮고 자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투까지...
때는 2016년 여름이었기에 E방송사의 고양이를 부탁해도 방영하기 전이라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도 점점 한계에 도달했다. 버티를 안고 여러 번 울기도 했다. 작은 세탁기로는 이불이며 외투를 빨기엔 역부족이라 세탁소에 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버티야, 누나 힘들어. 너 왜 그러는 거니?
그때부터 약 일 년 가까이 이어진 버티의 소변실수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버티가 어디에, 언제 소변을 보는지. 정말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 것인지. 고양이는 깔끔하고 완벽한 동물이라 믿고 있었기에, 버티에게서 이유를 찾기보다 지금 이 공간이 아이에게 어떤지 묻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