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묻다.

잘못된 싸움

by Emmett

그로부터 10일을 참았다.


이미 지난 일이기도 했고, 한티를 아느냐고 묻더라도 그곳의 수의사는 한티를 기억할까? 기억하고는 있을까? 사실 큰 기대는 할 수 없었지만 한티가 참 특별했던 것은 분명하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70센티미터에 가까운 기다란 몸과 두텁고 긴 꼬리는 한티의 상징과도 같았다. 군더더기 없이 까맣게 빛나는 털에 역삼각형의 얼굴, 초록색 눈, 커다란 발 그리고 특유의 붙임성과 말솜씨까지. 한티를 처음 본 사람들은 늘 한티에게 친밀감을 느꼈고, 금세 사랑해 주었으며, 안부를 묻거나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역시나 그곳도, 그 수의사도 한티를 기억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약 2년 전에 이곳에서 아이 건강검진을 했는데요,
최근 건강검진에서 폐가 좀 안 좋게 나와서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당시 아이 건강검진 내용이 있는 파일 같은 게 있을까요?
없다면 당시 아이 몸무게와 흉부 방사선 사진을 받아보고 싶어요~!



그렇게 전달받은 방사선 사진과 8.3킬로그램이었다는 한티. 이전의 검진 기록과 비교하면 한티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첫 건강검진 기록을 지금의 병원에 전달했다. 이때도 같은 상태였을까? 어릴 때부터 그랬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길 바라며 마주한 한티의 결과는.



안녕하세요. 보호자님! 자료 잘 받았습니다. 이전 병원의 방사선 사진이 조금 돌아가긴 했지만 이때도 동일하게 폐가 없는 상태로 판단됩니다. 그럼 이제 저희 병원에서 안내드린 한티 양육에 주의할 점과…



그랬다. 원래부터 좋지 않았다고. 2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티는 그런 상태가 맞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아내고 싶었다. '유난스러운 고양이 보호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로 갑자기 유난스럽게 군다는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동물병원이 생각하는 ‘모범적인 보호자’ 아니, ‘유난 떨지 않는 보호자’가 되기 위해 그렇게 10일을 참았다.






그날은 평소처럼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한티는 소파에 누워 있는 내 배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꾸벅꾸벅 조는 한티를 보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든 한티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어쩌면 이 순간이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길함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참고 있는 것이 맞을까, 한티야?"



나는 불평불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와도 넘겼고, 새 옷을 사더라도 여러 사람이 입어본 옷을 그냥 달라고 했다. 매장 직원이 창고에서 새 옷으로 꺼내려할 때조차 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지금은 내가 아니라 한티에게 벌어진 일이니까, 유난스럽다고 욕을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 일을 '내 일이니까'하고 또 넘겨 버린다면, 다른 아이나 보호자도 같은 일을 겪게 되지 않을까?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한 그때, 평온하게 잠이 든 줄 알았던 한티의 숨소리가 커졌다. 한티의 숨소리는 우리가 항상 이 모습으로 쉬던 이 공간을 여느 때처럼 가득 메웠다.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다른 공기였다. 그 순간, 이 큰 숨소리마저도 '폐가 없었고 내가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려서'라는 생각과 직결되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유난스럽게 굴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첫 건강검진이었던 만큼 아이의 상태를 자세히 알고 싶어 고르고 고른 병원이었지만 뚱냥이라고 TMT(말이 많다)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고, 아이가 건강하다니 다행이지만 놀린다는 느낌이 커 그 뒤로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와 보니 병원의 태도도 잘못된 진단도 너무 황당합니다.

폐 한쪽에 문제가 있어도 아이가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고 하지만, 그 사실을 저에게 공유만 해주셨어도 아이의 호흡기에 무리가 가지 않을 방법들을 찾아보고 관심을 더 기울일 수 있었을 텐데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합니다.

건강검진을 하는 건 아이의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지요? 아이 털까지 밀며 그저 의미 없는 검사들을 진행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 진행한 다른 병원의 건강검진이 아니었다면 전 한티를 2년이 아니라 평생 힘들게 하는 보호자가 되었을 겁니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상황이 다른 보호자들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검진과 결과 공유를 부탁드리며, 병원 측의 사과 및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데 대한 보상을 요구합니다.



나는 어쩌면 병원에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난 이 싸움을 통해 그저 한티를 힘들게 한 보호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병원의 사과 한마디만 있다면, 내가 알고서도 잘못한 게 아니라 잘못 알 수밖에 없었던 일이 될 테니까. 그러니 지난 2년간 병원이 놓친 것들로 인해 내가 한티에게 못해준 것들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정말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놓고서 병원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렸다. 보상은 병원을 압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병원의 입장은 뜻밖이었다.


폐 한쪽이 없는 것은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며, 확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 잘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확진을 하려면 추가 검사가 필요했는데, 검사를 권유했다간 과잉진료라는 오해를 살 수 있고 추가 검사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권유하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러한 병원의 입장에 평소 불평조차 못 하던 나는 돌변했다. 이건 당신들의 잘못이 맞고, 잘못을 인정하고 내가 아니라 한티에게 사과를 하라고. 그렇게 이틀에 걸친 싸움 끝에 내 계좌엔 27,500원이 들어왔다. 사과는 없었다. 그저 폐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드리지 못한 부분을 인정해, 전체 방사선 검사 중 폐와 관련된 흉부 방사선 검사 비용을 환불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을까. 무언가 잘못된 싸움이었다. 싸움을 이어가던 중에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움 속에서 나는 정말 병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게 맞나? 내 책임이 아니라고 병원에게 전가하려고 발악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 내가 해야 했던 건 병원과의 승부가 아니었다. 이렇게 더 이어가기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과 마음을 한티에게 집중하자고 그렇게 다짐하며 싸움을 끝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실을 알게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