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와 고양이
검도는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면 꼭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운동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살면서 무술 하나 정도는 익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맨손으로 상대를 타격하는 운동보다는, 정갈한 도복과 칼이 있는 검도가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단순히 검도를 하는 모습이 멋지다는 이유로, 나는 오랫동안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 지 4년쯤 지났을 때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검도장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검도는 약 8개월간 저녁 수련을 하고 때때로 새벽 수련도 나가는 내 취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상대방과 닿지 않는 대련 구조, 차별이 없는 수련, 오롯이 본인의 수련활동이라는 점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수련이 끝나고 호면을 벗을 때의 묵직한 숨결 또한 좋았다.
다시금 생각해 보니 검도는 고양이와 참 닮아 있다. 조용히 다가가 기습하는 듯한 기술은 물론이며,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다는 것, 도복의 자태 또한 멋있어 그야말로 고양이와 같은 무술이다. 그런 검도에 매료되어 있었지만, 한티의 상황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마음을 계속 괴롭혔다.
우선 꼭 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한티가 먹고, 쉬고, 생활하는데 무리가 갈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바꾸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시중에 판매하는 일반적인 식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식사를 할 때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굽어 앉아 식사를 하고서 큰 숨소리를 내뱉는 한티를 자주 목격한 것이 계기였다. 그렇게 아이들의 키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식기로 교체했다. 역시나 키가 큰 한티는 식기를 최대 높이로 조정해야 조금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한티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캣타워였다.
천장과 바닥을 고정하는 캣타워인 캣폴을 이곳저곳에 두고 사용하고 있었는데, 캣폴 가장 하단엔 발판을 두지 않았다. 아이들이 워낙 잘 뛰어놀았기 때문에 가장 하단의 발판을 밟지 않는 거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판을 추가로 구매해 집안의 모든 캣폴을 손보았고, 내려올 때마다 '쿵!' 하는 소릴 내던 한티는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캣폴을 오르내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이었다.
벤토나이트 모래를 사용하고 있어 바닥에 항상 모래가 있는 게 불편했던 나는 모래가 덜 튀도록 천장은 막혀있고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어, 위에서 아래로 뛰어 내려가고 뛰어 올라오는 구조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장실의 구조상 한티의 몸에 무리가 갈 수 있고 사이즈도 작았으며, 천장이 막혀있어 화장실 내부가 먼지로 가득할 것 같았다. 나는 모래가 밟히는 집에 익숙해지기로 하고 과감하게 빅사이즈 오픈형 화장실로 교체했다. 모래가 다시 바닥에 흩어졌지만, 그 바닥이 아이들에겐 조금 더 편안한 세상이 되었다.
큰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손보고 나니 식사 후 약간의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은 없어지고, 캣폴에서 내려올 땐 사뿐한 착지, 특히나 화장실은 항상 눈곱이 끼어있던 한티의 눈에서 눈곱이 사라지도록 하는 효과까지 가져왔다. 진작 이렇게 해 줄 걸, 그래도 이제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과의 삶을 위해 또 정리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검도 외에 내 유일한 취미는 여행이었다. 난 고양이, 강아지를 두고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보호자들을 여태 의아해했다. 펫시터를 불러 아이들을 챙겨줄 수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한티가 내 곁에 있는 동안 그런 식으로 약 7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펫시팅을 요청하면 펫시터가 방문하는 동안 아이들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해 주는데, 여행을 가서 그 시간만큼은 여행은 잠시 중지하고 핸드폰을 붙잡고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팅이 종료되고 나면 여행을 다시 재개하는 그런 여행들을 해왔었다.
그러나 이번 한티의 상황을 인지한 뒤로 여태 이해하지 못했던 보호자들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함께하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했다. '그래, 여행도 조금은 자제를 하자.' 다행이라 해야 할까,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다니기엔 무리인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또 정리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랬다. 검도 역시 그날 부로 정리하기로 했다. 검도관에 들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5.5킬로그램은 족히 넘는 도복과 장비를 챙겼다.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이제 이것들을 챙겨 집으로 향한다는 것은 앞으로 나에게 약 한 시간 반이 생긴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한 시간 반이라면 사료를 채워도, 정수기를 닦아도, 화장실을 치워도, 사냥놀이를 해도, 예쁘다며 쓰다듬고 사랑해주어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2021년 3월 10일 저녁 7시경 검도장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내 아이들이 기다릴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오래만에 저녁을 함께 해야겠다 생각하며, 저녁 찬거리까지 사 들고 집으로 달려갔다. 달려가 현관문을 열면, 언제나처럼 현관 앞에서 날 기다려줄 아이들을 마주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