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지 Sep 11. 2024

바다에 비치는 윤슬처럼

'슬픔'에 대하여


   ‘슬픔’이란 무엇일까? 슬픔은 때론 우울, 절망, 후회 등과 같은 감정에 대체하여 불리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감정이 변하는 청소년들에게 슬픔은 익숙한 정서일 것이다. 나는 주변 친구들이 슬픈 감정을 외면하고 남에게 숨기는 모습을 흔하게 보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우울하거나 슬픈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경험과, 정서를 공부한 내용에 따르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부정하고 숨기기만 하면 그 마음을 돌볼 수 없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숨겨진 슬픔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슬픈 마음마저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슬픔’ 하니 문득 얼마 전 멀리 놀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유독 날씨가 화창하고 구름이 예뻤다. 전날에 거센 비바람이 한바탕 불고 지나간 덕분인지, 마치 만화 속의 한 장면처럼 하늘이 맑았다. 차를 타고 가족들과 수다를 떨면서 가고 있는데, 창문 너머로 강이 보였다. 이끼 탓인지 너무 깊은 탓인지 내가 생각하던 강의 이미지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강이었다. 그 강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무거운 감정에 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연하고 씁쓸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슬픈 감정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다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우울감이 몰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바다나 강을 보면, 그들이 이 세상 모든 것을 품고 감춘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특히 고요한 바다를 볼 때는 내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에 더 씁쓸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곧이어 나는 자꾸만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하던 친구를 생각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낸 절친한 친구가 있다. 어릴 땐 이 아이가 없다면 모든 게 따분할 만큼 소중한 친구였다. 주위에서 ‘너희 왜 자꾸 싸워?’라고 물을 때면, ‘우리 싸우는 거 아닌데?’라고 할 정도로 장단이 잘 맞는 사이였다. 그런 사이에 우리도 모르게 살그머니 금이 갔는지, 작은 다툼이 생겼고, 거리가 생겼다. 지금까지의 시간에 비하면 그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금방 좁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의 공백까지 지워버릴 순 없었고 친구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이 변한 듯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로 다른 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연락을 자주 했지만, 그 친구가 하는 말과 내가 하는 말이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가 하는 말들과 행동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멀어졌고, 친구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하며 무언가에 휩쓸려 방황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친구가 우리 사이를 배신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실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관계를 멈춰놓았다.

   우리 사이가 멈춰져 있던 어느 날, 친구가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재밌겠다고, 별도 보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바다가 보이는 곳은 별도 잘 보인다면서, 그날 이후로 며칠을 밤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요컨대 난 평소에 바다나 강 같은 흐르는 수면을 보면, 자유롭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고 확신하며 지냈다. 그래서 ‘친구가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나 보다’, ‘시험 기간이라 힘든가 보다’라는 생각만 할 뿐, 더 깊고 무거운 감정을 느끼고 있으리라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강을 보고 슬픈 감정을 느낀 순간, 친구도 그렇게 유사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됐다. 난 그동안 변해버린 친구를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에게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와, 새로운 길을 같이 걸어보자고 하지 못했던 나에게도 실망했다. 이것은 나의 허무맹랑한 추측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 친구는 무기력, 우울, 후회 등을 포괄하는 슬픈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사이가 전처럼 편안해지길 바라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러한 생각이 떠오르고 나는 친구를 미워했던 그 시간을 후회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강을 본 그 순간에 맑고 화창했던 날씨처럼 우리의 머지않은 미래 또한 그러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부터 난 멈춰놓았던 친구에 대한 미움을 담은 나의 마음을 버리기로 하였다. 바다에 윤슬이 비치듯 나도,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친구에게 한 줄기의 빛이 되어주고 싶었다.


   물론 내가 바다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다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또한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 그중에서도 타인이 느끼는 무기력과 슬픔, 우울이란 정서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더욱 확실시되는 것은 우리가 모두 하나하나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만약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다면,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해 보기를 바란다. 슬플 때 억지로 더 웃으려 하거나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괜찮다. 슬픈 마음에 여유를 주고 공간을 주면, 감정에 매몰될 가능성이 줄어들고 새로운 길을 찾을 확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슬픔은 무의미하지 않다. 슬픔을 느낀다면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것이고 슬픔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처하기 위해 보이는 반응이다.



      이 글은 내가 느낀 관계에 대한 슬펐던 순간과, 슬픔에 관한 글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슬픔을 숨기지 말고, 슬픈 마음을 소중하게 쓰다듬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와 친구의 상황이 더 편해졌을 때, 화창하고 시원한 어느 날 바다와 별을 보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꿈꾸며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따뜻하고 다정한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