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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 Sep 11. 2024

등대

'불안'에 대하여


   나는 불안을 아주 잘 느끼는 사람이다. 아마 근 몇 년간 내가 가장 자주 느낀 정서는 불안일 것이다.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작은 일조차도 쉽게 시작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불안감을 느낄 때면 미래에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걱정하기도 한다. 또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한 불신  때문에 불안해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불안감을 초래하는 일은 너무나도 많다. 오늘, 이 글에는 최근 내가 느낀 ‘불안’ 중 가장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일을 담아볼까 한다.



   나는 불과 몇 개월 전, 취미로 삼던 운동을 하다가 십자인대가 반 정도 파열되었다. 평소에 작은 감기조차도 잘 걸리지 않던 내가 이렇게 크게 다치고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사람을 비관적으로 만드는지, 처음 알았다. 난 평소 상처를 받아도 금방 잊어버리고, 긍정적으로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번 다치고 나니, 세상을 언짢게 바라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수술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파열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부정적으로 변한 내가 우습기도 했다. 학교에 가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지니 답답하고 속상했다. 어찌어찌 집에 와서는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런 복합적인 마음이 불안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다리를 다치고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내가 전처럼 움직이지 못하면 어떡하지?’였다. 다시 달릴 수 없고 바닥에 앉지도 못하는 생각을 하니까 우울해졌다. 그저 까마득한 미래로 인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문득, 계속 이런 마음으로 지내면 앞으로 일어날 일이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처럼 흘러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내 상상에 불과하던 일이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평소 소홀했던 재활 운동도 열심히 하고(그마저도 무릎을 굽었다 피는 것밖에 못했지만.) 나의 미래가 내 생각처럼 메말라 있지 않기를 바라며 지냈다.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를 느끼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가, 이윽고 나는 깁스와 목발을 떼고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다리를 다치기 전, 보통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겹도록 반복했던 대중교통의 굴레에 다시 들어간다는 게 따분하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아직 전처럼 마구 움직일 수는 없지만, 난 다리를 다침으로써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또 한 번 성장하는 기회였던 것 같다. 그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상에서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것들이 어떤 이들에겐 불편할 수 있는 큰 산이었다는 것을 배웠다. 



   얼마 전에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을 봤다. 전편도 재밌게 봤는데, 그 분야에 관한 공부를 하고 난 후에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이 영화에서는 불안, 당황, 슬픔 등의 우리가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감정들이 사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내가 정서를 공부하며 가장 크게 새긴 것은, 감정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모두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불안’은 위협을 발견하고 행동에 대비하며 나에게 도움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몸의 균형이 깨져 우리의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선,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감정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 감정은 더더욱 커지고 오히려 사로잡힐 수 있다. 나는 미래와 고통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혔지만, 재활이라는 어스레한 두려움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받아들였다. 내가 무조건 옳고 대단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불안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불안을 직면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 또한 좋은 경험이라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 또, 내 감정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 상황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 제삼자가 된 것처럼 사로잡힌 감정에서 뒤로 물러나 그 상황을 바라보면, 때로 우리의 생각보다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불안감을 느끼면 예민해지고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처럼 사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미래의 위험을 경고하여 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자기 보존 본능을 발휘하게 만드는 긍정적 기능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의 불안을 맞닥뜨린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 시험을 앞뒀을 때의 불안, 다른 사람보다 내 속도가 늦는다는 불안 등, 이 작은 세계에 우리의 불안은 크고 방대하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불안하지 않을 때보다 불안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불안을 이겨내고 시도하면 성장한 나의 모습이 그 뒤를 맞아줄 것을 안다. 우리의 앞에는 수많은 불안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너머에 우리의 성장이 기다리고 있기에, 오늘도 한 발 걸어갈 수 있는 것 같다. 불안은 없어져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해 주는 등대 같은 정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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