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임신 9개월. 완벽한 D라인을 그리고 있는 내 몸매는 누가 봐도 만삭의 임산부다. 처음엔 임산부 뱃지를 다는 것도 어색했던 내가 이젠 그럭저럭 임산부석에 앉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임산부가 되어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신기해하는 시선, 걱정 어린 배려, 참견 아닌 참견, 뜬금없는 축하까지. 길에서 이렇게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본 적이 살면서 얼마나 있었나. 처음인 것 같은데.
뱃지를 다는 날이면 나 혼자 아무도 달지 않은 명찰을 꽂고 학교에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배려를 위해 만들어진 핑크색 뱃지와 임산부석이지만 원치 않는 주목을 받거나 반대로 소외감을 만들어내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최대한 재빠르게 아무 탈 없이 임산부석을 탈환해야 하는 미션을 받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조용한 응원과 따뜻한 시선을 받을 때도 있다.
몇 달간 임산부로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고마움과 미안함, 멋쩍음과 당황스러움 등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느꼈다. 내가 마주한 불특정한 상황들을 더하지도 덜어내지도 않은 채 그대로 공유해볼까 한다.
처음으로 뱃지를 달았던 날, 지하철 문이 열렸고 열차 안에 들어서자마자 두리번거리며 핑크색 자리를 찾았다. 임산부석에는 스마트폰 게임에 심취한 남학생이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서게 되었다. 그 학생은 아마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고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네다섯 정거장쯤 지났을 때였나. 옆에서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학생에게 나를 가리키며 양보해주라고 말했다. 학생은 나를 본 후 놀라더니 죄송하다고 못 봤다고 말하며 황급히 일어났다. 나는 두 사람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앉았다.
또 다른 임산부석 앞에 섰던 날엔 한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나는 그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다. 두세 정거장쯤 지났을 때였다. 나를 발견하고는 바로 일어서는데, 그 순간 옆에 서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앉으려고 했다. '아 못 앉는 건가'하고 생각하던 찰나, 앉아있던 아주머니는 앉으려는 아주머니를 제지하며 나를 가리켰다. 순간 멋쩍어하며 "아 못 봤네요."라는 대답과 함께 나는 두 사람에게 양보를 받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바쁜 어떤 아주머니 앞에 섰을 때는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양보를 받았다. 내가 앞에 서자마자 자리를 양보해 준 백발의 아저씨도 있었고, 임산부석에 자리가 비었다며 가서 앉으라고 말해 준 사람도 있었다.
앉기를 포기하고 다른 자리 앞이나 문 앞에 서있을 때 양보를 받은 적도 있다. 열차에 타자마자 발견한 임산부석엔 아이 아빠가, 그 옆 자리엔 아이가 앉아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문 앞에 서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등을 톡톡 치길래 돌아보니, 아이 아빠가 다가와 자신의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말했다.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아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끝까지 양보를 받지 못한 적도 있다. 임산부석에서 졸고 있는 아저씨 덕에 서서 가다가 다른 자리에 여학생이 내리면서 앉기도 했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열중한 아주머니 앞에 내내 서있기도 했다.
노약자석에 앉은 날엔 어떤 할아버지가 계속 쳐다보는 바람에 내내 신경이 쓰였었다. 어떤 수상한 청년은 한 손에 악력기를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열차 안을 왔다 갔다 했었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자꾸 내가 앉아있는 임산부석 근처를 맴돌아 속으로 겁을 덜컥 집어먹기도 했었다.
어느 평일 오후. 지하철을 기다리느라 벤치에 앉았는데, 어떤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바닥이 차가울 텐데.."
"괜찮아요."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 축하를 받았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아이를 품은 그 자체로 온전한 축하를 받는 일은 참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가는 행선지의 열차가 도착해 먼저 일어나는데, 사람들로 꽉 찬 차내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휴, 자리가 없어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