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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Nov 20. 2019

넌 왜 그렇게 김치볶음밥을 좋아해?




집에 딱히 먹을 게 없을 때 먹는 음식. 김치는 언제나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니, 요리하기 귀찮을 때 찬밥에 대충 볶아서 계란 프라이 하나 얹으면 금방 완성되는 요리. 가끔 김가루나 깨소금을 뿌려주면 풍미가 더해지긴 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내게 김치볶음밥은 그런 음식이다. 요리 잘하는 엄마가 이런 시시한 음식을 해준 적은 없었다. 내가 자주 해 먹어 본 적도 없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가끔 나오던 김치볶음밥은 맨밥 먹기엔 좀 심심할 때 나오는 수준이었고, 어릴 때 자주 가던 김밥천국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이 메뉴를 시켰던 기억은 없다.


가장 멋없고 특별하지 않은 한 끼가 연상된다. 평범 무난한 하루에 김치볶음밥이 더해지면 정말 존재감 없는 하루가 완성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내겐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오래된 운동화를 대충 구겨 신는 날의 마음처럼 아무거나 대충 먹고 때우고 싶을 때 그것도 아주 가끔 생각나는 음식이라고 해야 할까.


공교롭게도 김치볶음밥은 남편의 최애 음식이다.



- 오늘 저녁은 뭐 해 먹을래?


- 김치볶음밥 먹고 싶은데..



냉장고에 재료가 풍성할 때나 텅텅 비었을 때나 그는 한결같이 김치볶음밥! 을 외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말을 곧장 자르며 다시 묻는다.



- 그거 말고 딴 거.



물어보기도 전에 거절하기도 한다.



- 김치볶음밥 빼고 얘기해.



나의 끝없는 무시에도 그는 참 끈질긴 타입이라 결국 열 번 중 한 두 번은 김치볶음밥 해 먹기에 동참하게 된다. 결혼 전보다 훨씬 자주 김치볶음밥을 먹게 된 셈이다. 


나의 길고 심한 입덧으로 남편은 한동안 김치볶음밥 금식기간을 겪어야만 했다. 냉장고 문만 열어도 집에서 김치 썩은 내가 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끔 저녁에 외출을 할 때면 그는 혼자서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단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가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처럼. 그것도 아주 신이 나서.


그의 김치볶음밥 사랑을 그저 지겹고 따분하게만 여기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었고 그의 대답은 역시나 몇십 번은 들어왔던 그것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릴 적 김치볶음밥과 얽힌 특별한 사연이 있다던지 아니면, 어떤 결핍감에서 오는 애착이랄지 그런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물었다. 



- 도대체 왜 그렇게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는 거야? 자세하게 말해봐.



그의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허무했다.



- 그냥 맛있어서 먹는 건데. 고슬고슬한 볶음밥 식감에 짭조름한 김치와 소시지 혹은 고기를 넣으면 최강 꿀맛이지. 그리고 김치는 집에 언제든 있으니까. 언제나 먹을 수 있고.


- 그래서 더 식상한 거 아냐?


- 왜 식상하지? 좋아하는 건 몇 번을 먹어도 맛있는데.


- 특별하지 않잖아. 대단한 것도 아닌데..


- 김치볶음밥 생각보다 어려워. 그리고 늘 맛나다니까. 김치전, 김치찌개, 김치찜 다 맛나.


- 너무 평범한 건데 항상 좋아하길래 김치볶음밥 못 먹어서 아쉬웠던 사연이라도 있나 생각했어.


- 난 어릴 때 모자람 없이 먹었어 언제나. 


- 그럼 반대로 지겨울 수도 있지.


- 난 지겨운 거 잘 못 느껴. 좋은 거면 언제나 좋음. 좋았던 게 싫어지지 않고 싫었던 게 좋아지지 않아.


- 넌 그런 사람이구나.




김치볶음밥을 주제로 한 짧은 대화의 끝은 뭔가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맞아,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결같은 사람. 특별하지 않은 김치볶음밥도 언제나 특별하게 여기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 


내게도 그런 마음으로 오랜 시간 옆에 있었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평소엔 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처럼 것도 같으면서도 어떨 내가 자세히 보지 않은 채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는 더 가지지 않아도 모자라다고 여기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묵묵하고 성실하면서도 정신이 단단한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어 매일 갈대처럼 흔들리고 휘청이는 나 같은 사람도 일상의 평온을 유지하는 게 가능해진다. 


다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냐는 나의 질문은 참 바보 같고 무의미한 거였다. 


김치볶음밥이나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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