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의 사투

by 흔적



어릴 때부터 잠이 없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원래 타고나길 식탐이 별로 없는 사람이 있듯 남들보다 수면욕이 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고 난 언제나 조금씩 잠이 모자라다고 느꼈기에.


과거엔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잠을 적게 자는 것이 미덕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하루를 먼저 준비하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일을 해야 성공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기대에 찬 분위기가 대기에 흐르던 시절이 있었다.


잠이 많은 사람이 그러한 시류 속에 살아간다는 건 늘 버겁고 힘겨운 일이었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해가지고 밤이 올 때까지 머물렀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맞으며 일어나 북적이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야 했으니. 하지만 묘하게도 이런 피곤에 빠져 산다는 건 어딘가 모르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있다는 헛된 안심.


새벽에 독서실을 나설 땐 괜스레 뿌듯했고 밤새 야근하고 아침에 택시를 타고 퇴근할 때면 머리 끝까지 차오른 피곤 아래 미세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과거의 난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었고 일복도 타고났으며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게 아까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요즘의 난 그 어느 때 보다 힘겹게 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과거의 것과는 매우 결이 다른 싸움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낸 성취감이 만들어낸 피로가 아닌, 철저히 타의에 의해 자고 깨는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단순히 잠이 모자라는 수준을 넘어 진이 빠져버리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내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야말로 폭풍의 한가운데. 이 시점이 의미하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테다.


세상을 갓 나온 신생아는 하루 온종일을 먹고 자고 싸는데 보낸다. 한 번 먹고 자고 싸는 것이 하나의 패턴인데, 이 간격은 거의 두세 시간에 한 번씩 돌아온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에 왔던 첫 2주는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기도 했다. 아무런 육아지식도 노하우도 없던 나는 아이가 모유를 먹다 자면 깨우다 지쳐 내려놓곤 했는데, 아이는 배부르게 먹지 않으면 1-20분을 자다가 갑자기 다시 깨서 배고프다며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도 했다.


아직 몸조리도 끝나지 않은 나는 야심 차게 완모를 결심했다가 따라주지 않는 체력과 모유량, 수면부족으로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모유수유는 분유보다 배부르지 않은 탓에 아이는 더 자주 깨고 한 번 먹이는데 3-40분이 넘게 걸린다. 다 먹으면 안아서 트림시키고 재우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면 아주 성공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다음 텀이 오기 전에 나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 밥을 잘 챙겨 먹고 집안 정리도 하다 보면 잠이 모자라고 잠을 선택하면 잠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연스레 잠과 밥 사이의 기로에서 갈등하게 된다.


공부나 일은 적어도 내 의지대로 시간을 분담해 스케줄링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육아는 철저히 아이에게 맞춰지다 보니 그마저도 어렵다. 스마트폰 알람은 울리면 끄고 5분이라도 잠을 더 청할 수 있지만, 아이가 우는 타이밍에는 자비가 없다. 아무리 피곤해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터득했던 노하우나 논리 같은 것들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터득하기 힘든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음이 느껴진다.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아이에게 새로 태어난 이 세상이 새로움 투성이이듯 내게도 모든 것이 새롭다. 엄마로서 한 달 차. 나도 이제 한 살이다.


남편은 지인에게 우스갯소리로 '육아를 하려면 pc방에서 밤샐 수 있을 체력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 기억은 희미하지만 나도 언젠가 pc방에서 밤을 새워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세 번에 걸쳐 완성한 이 글을 시간을 들여 쓴다는 것도 내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잠과 밥을 잠시 미뤄두고 피곤을 부여잡고 쓰는 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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