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처음인 시선에서

by 흔적


대학에 입학해서 첫 오리엔테이션에 갔을 때 나는 설레기보다는 어색하고 막막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뻘쭘함이란. 중고등학생 시절의 소풍은 왜 항상 놀이공원이었을까. 놀이기구 타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을 설치곤 했다.


만약 내가 갑자기 낯선 나라에 혼자 뚝 떨어지게 된다면 어떨까. 아무런 준비도 정보도 없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면 마냥 즐거울 수 있을까. 능숙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여러 차례 길을 헤맬 거고 어찌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거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첫 경험들로 피곤해하며 쉬이 잠에 들지 못할 거다.


이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아기의 기분이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잠에 드는 법을 모른다. 엄마의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평평한 침대에 등을 대고 혼자 자야 한다. 배운 적도 없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해내야만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잠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암흑과도 같다. 깊은 잠을 자본 적도 없어서 자꾸만 깬다. 잠에서 깨 엄마가 곁에 없으면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졌다는 생각에 울음을 장전한다.


배불리 먹을 줄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먹다 잠이 들고 배고파서 금방 깨기도 한다. 오분 먹고 삼십 분 잠들기를 반복한다. 어쩌다 십 분을 넘게 먹고 한 시간이나 잠에 들기도 한다. 그렇게 조금 더 먹고 더 길게 잠을 잔다. 한 번에 많이 먹을 수 있는 힘도 생겨난다.


먹은 게 있으면 내보내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하지만 배에 힘을 주는 방법조차 모른다.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잘 되지 않는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주어 본다.


처음엔 흑백 같던 세상이 점차 색으로 가득 차 풍성해진다. 흐릿하던 초점도 조금씩 선명해진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누군가와 눈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낯선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 처음 나와 익숙함을 배워가며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모든 동물은 엄마 뱃속에서 일 년을 채우고 세상에 나오지만 오직 인간만이 아홉 달 만에 세상의 빛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나머지 세 달은 세상에 나와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채워야 사람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단다. 그래서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는 거라고.


산후조리원에서 배운 명언이다. 아직 우리 아기는 백일의 기적을 만나지 못한 품 안의 아기 캥거루 같은 존재다. 육아에 힘들 때면 이 말을 떠올린다. 나의 입장이 아닌 아기의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세 시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수유텀이, 점점 안기 힘들어지는 아기의 무게가, 부족한 잠으로 쌓인 피로가 버겁기도 하지만 아기도 나름의 고충이 클 테다. 축축해진 엉덩이 때문에 얼마나 추웠을까. 울어도 빨리 오지 않는 엄마 때문에 얼마나 배고팠을까. 암흑 같은 잠을 청하느라 얼마나 두려웠을까. 처음 만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낯설까.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해하며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이 한없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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