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이었다. 한참 입덧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였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tv를 틀어놓고 보다가 토하다 잠들기를 반복했던 그때. 두 번은 겪지 못할 것 같았던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그때.
올리브 채널에선 이연복 셰프를 필두로 한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에릭, 존박, 이민우, 허경환과 함께 미국 서부를 돌며 푸드트럭에서 장사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두 말하면 잔소리인 이연복 셰프의 짜장면, 짬뽕, 볶음밥, 동파육, 멘보샤 등 화려한 중국요리가 등장했는데 기름에 지글지글 볶는 소리, 튀기는 소리는 asmr 그 자체였고 식욕을 한껏 돋우는 비주얼이었다. 중국요리 외에도 전통 쌀음료인 식혜와 미숫가루,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핫도그, 햄버거 등 다채로운 메뉴들을 선보였다.
음식을 먹는 미국인들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다. 혼밥을 즐기기도 하고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개와 함께한 이도 있었는데 제각각인 사람들의 먹방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진땀 흘려가면서도 열심히인 멤버들 간의 케미도 좋았다. 존박이 서빙과 응대를 프로 수준으로 하며 손님들로부터 별 다섯 개를 받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정말 열심히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본방은 물론이고 재방도 여러 번. 재미도 있었지만 더 열심히 보려고 노력했다. 뭐라도 의지하고 집중해서 정신을 팔 것이 필요했기에. 그만큼 절박했었지. 먹는 건 근처도 가기 싫었던 때에 음식이 쉴 새 없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하루 종일 보며 속을 진정시키려 했던 내 모습을 지나고서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나도 저 맛있는 걸 잘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먹고 싶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정말 정신없이 괴로워하다 지나간 두세 달이었다.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때의 기억은 딸기주스를 사 가지고 집에 오던 길에 토했던 거, 친정에서 지낼 때 엄마가 날 깨우며 뭐라도 먹이려던 거,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썩은 내가 진동하던 거, 남편의 피부에서 김치 국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던 느낌, 엘리베이터를 타는 잠깐의 순간에도 서 있기 힘들었던 괴로움 같은 것들이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또 끝없이 아득해진다. 어떻게 그 시간을 지냈는지 모르겠으며 정말 내게 있었던 일인가 싶기도 하다.
어젯밤 외출하고 돌아온 후 집에서 tv를 틀었는데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이 방영하고 있었다. 보고 있는데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뭐지 이 느낌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너무도 선명했다. 누가 봐도 너무 맛있을 법한 음식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이 이런 거라니. 저녁을 못 먹어 한창 허기졌던 순간에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지며 작년 이맘때가 확 떠올랐다.
과거에 열심히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으면 그때의 분위기가 떠오르는 것처럼 잊고 있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울렁거림의 감각이 내 안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탓이겠지. 어쩌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기억보다 몸의 기억이 더 강렬한 것이 아닐런지. 평생 이 감각은 면역체계처럼 지워지지 않고 나를 따라다닐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