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비밀의 숲'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탄탄한 스토리에 긴장감 넘치는 연출,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까지 뭐 하나 흠잡을 때가 없다.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까지 검찰과 경찰 조직의 생태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전직이 의심스러울 정도. 시즌2는 보통 전 작보다는 아쉽기 마련인데, 이 드라마는 또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검경의 대립이라는 다소 무겁고 복잡할 수 있는 소재를 갈등하는 캐릭터들의 면면을 통해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다. 검경협의회 장면을 추격전만큼이나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될 줄이야.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시즌2 소식을 듣고서부터다. 그렇게 웰메이드라더라, 마니아들이 많다더라라는 이야기를 sns에서 꽤 자주 접하게 되니 궁금해졌다. 내 취향은 아닐 것 같은데 한 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넷플릭스로 시즌1부터 시즌2 6화까지 빠르게 정주행을 마쳤다. 어떤 날은 무서워서 못 보겠다 싶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또 보고 예상치 못한 반전에 감탄하며 희로애락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제 드디어 본방으로 볼 차례. 어제 처음 tv로 7화를 시청했다. 재빠르게 할 일을 마친 후 엉덩이 들썩이며 tv앞에 앉았다. 여전히 긴장감이 넘쳤다. 서동재 검사의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으로 또 한 번 시작된 혼돈의 카오스. 언제나 그랬듯 모두가 용의선상에 오르며 시청자들에게 끝없는 의심과 추리를 선사했다.
그런데 나 왜 미세하게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대사도 잘 안 들리는 것 같고. 놓친 대사를 자꾸 남편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 그랬어?"
"몰라"
이건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보는 도구가 달라지니 긴장의 끈도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귀에 에어팟을 꽂고 완벽히 드라마 사운드 속으로 들어가 놓친 대사, 헷갈리는 장면들을 '뒤로가기'하며 반복해 보던 경험에서 빠져나와 거실에서 큰 화면으로 남편과 함께 집안 곳곳으로 흩어지는 소리로 대사들을 들으며 드라마를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커피 좀 마실까 싶어 주방으로 가 달그락 거리면서 보기도 하고 커피를 쏟아서 치우다 보니 몇몇의 장면과 대사들은 그냥 흘려보냈다. 이제 좀 각 잡고 보려고 하니 벌써 끝나? 하는 아쉬움. 방금 내가 뭘 봤지. 보긴 봤는데 허전한 기분.
이 별것 아닌 차이가 왜 이렇게 새삼스러울까. tv는 아주 어릴 적부터 봐왔기에 분명 더 익숙했고 화면은 클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언제 이렇게 몸이 스마트폰에 적응하게 되었을까.
넷플릭스라는 플랫폼도 한몫하는 것 같다. 앱에 접속하면 마치 영화관처럼 여러 영상들을 나열해놓은 가상의 큐레이션관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안에서 뭘 고를까 고민도 하고 나중에 볼 영화들을 찜 해놓기도 하다가 하나를 골라 영화 안으로 들어간다. 영상을 보는 동안은 영화관에 혼자 앉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을 받는다. 내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 말고는 그곳에서의 경험에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가 변하면서 쓰는 도구가 달라지고 디지털 공간에 대한 적응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스트리밍의 습관도 가랑비에 옷 젖듯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잠들기 전 유튜브 한 바퀴 순회해야 안심이 되고 팟캐스트를 듣다가 에어팟을 귀에 꽂고 잠드는 날이 많아지는 것처럼.
혼자라는 것도 몰입감에는 큰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 세상 속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안에서 만나는 하나의 영상은 온전히 나만의 취향으로 선택한 것이고 언제 얼마만큼 볼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보다가 지루하면 금세 다른 걸 선택할 수 있고 반대로 좋아하면 여러 번 곱씹는다. 어떨 땐 보는 시간보다 고르는 데 더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고르는 행위 자체에 더 즐거움을 느낄 때도 있다. 누군가와 약속을 정해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와 밥을 먹으며 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때와는 결이 다른 경험이다.
혼자라서 더 자유롭고 집중하게 되며 나의 취향을 세밀히 닦을 수 있다는 다양한 매력이 있는 반면, 이 모든 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가속화되는 만큼 타인과의 소통이나 물리적인 공간 경험으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두게 된다는 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데 더 아쉬운 건 그리 아쉬워하지도 않게 되었다는 것. 처음엔 영화관 못 가서 아쉽다 정도였는데 이젠 영화 보러 가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줄어들었다. 영화관에서 티켓을 뽑고 팝콘을 먹으며 광고마저 열심으로 보던 그 설렘은 다 어디 갔나. 한 때 집집마다 들여놓았던 홈시어터룸도 기억이 가물할 정도로 철 지난 유행처럼 느껴질 뿐이다. 고심해서 샀던 빔프로젝터도 집 안에서 종적을 감췄다.
똑같은 드라마, 똑같은 영화지만 언제 누구와 어떻게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내 안에는 다른 취향과 경험, 습관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것들이 생각을 달리하게 만드는 것 같다. 혼자가 편해지면서 점점 더 뾰족하고 좁아지는 나의 세계는 좁아진 만큼 깊어지긴 했을까.
하루에 한 번쯤은 하늘을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