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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24. 2020

매일 조금씩 다른 길로 돌아가는 사람


어떤 심리테스트에서 '매일 조금씩 다른 길로 돌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결과를 받은 적이 있다. 매일 똑같은 길을 가는 건 지겹고 그렇다고 너무 낯선 길은 두려운 사람. 끊임없이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내고 싶어 하지만 막상 그 루틴이 반복되면 무료해지는 사람. 내가 정한 내 패턴을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작은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두가 그렇지 않나. 누구나 안정적인 환경을 원하지만 또 누구나 변화를 원한다. 변화가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라는 확신만 있다면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변화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그 불확실성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은 얼마나 안정을 추구하는 동물인가.


나는 아이를 키우며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자주 발견한다. 아직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아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아기들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욕구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아기들은 매일 같은 일들을 반복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 노는 시간, 함께 있는 사람, 공간, 물건들에 의해.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일정한 생활 패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기는 새로운 경험도 좋아한다. '인간 호기심 천국'이 따로 없다. 매 순간 고개를 돌리고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탐색한다. 동요를 틀어주면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머리를 쿵하고 박을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새로움을 향해 돌진한다. 하루 종일 머리카락이 젖고 등이 뜨거워지게 기어 다니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입에 넣어본다.


부모와 안정적으로 애착이 형성된 아기는 생후 7-8개월쯤부터 낯을 가리기 시작한다. 낯을 가리는 시기에 낯을 가린다는 건 좋은 신호다. 낯선 사람을 보면 울음을 터뜨리고 엄마품을 찾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곧 익숙해지고 마음을 놓게 되면 금방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아기의 이런 감정 기복이 어른이라고 다를까. 다만 어른들은 티 내지 못하고 속앓이 할 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뻘쭘한 자리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와 안정을 찾는다. 음악을 듣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친구와 수다를 떤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떤 날이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행복감을 주는 날인가 상상해본 적이 있다. 여행도 좋고 새로운 만남도 경험도 좋지만 가장 행복한 날은 아닐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극히 평범한 하루 속에 내가 나에게 허락한 약간의 변화나 기대감이 주어질 때. 그 날이 내겐 가장 만족스러운 날일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하루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진 날 따뜻한 물로 충분히 샤워를 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카페에 나와 책을 읽다가 새로운 글감들을 그득하게 건져 올려 노트에 이런저런 메모를 하는 거다. 오후엔 평소에 벼르던 전시를 하나 보고 친구를 만나 수다도 좀 떨다가 주변 가게들 구경도 하고 가까운 공원에서 짧게 산책도 한다. 눈에 띄는 에코백을 하나, 예쁜 노트 한 권, 펜 한 자루, 맛있는 디저트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고 우리 아기 마음껏 안아주며 방긋방긋 웃는 얼굴 확인하고. 아기가 잠들고 나면 오랜만에 취향에 맞는 영화 한 편 보고 잠이 든다.


남편이 아기를 돌보던 주말 혹은 휴가에 자유부인이었던 몇몇 날들을 조합해 약간의 살을 더 붙여봤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소소한 행복과 자유를 느꼈던 날. 익숙한 것들에 약간의 새로움이 얹혔던 날. 오늘 읽은 책, 메모한 글귀, 만난 사람, 머문 공간, 산 물건, 나눈 대화들이 내일의 나에게 어떤 영감이 되어줄 것 만 같은 기대감이 차오르던 날. 기대감은 그저 기대감일 뿐이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지녔지만, 그래도 될 것 같은 긍정의 신호가 불안을 설렘으로 바꾸어 준다. 


이 약간의 설렘이 얼마나 큰 동력이 되는지 모른다. 하루를 살아가는 감정과 태도를 결정하고 표정을 바꾸는 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런 매일이 겹겹이 쌓여 나의 삶이 될 테니.


오늘도 고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다른 길로 돌아가며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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