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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Sep 12. 2020

셀프 딜리버리 맘의 하루


무엇이든 배달되는 세상에서 배달을 이용하지 않고 사는 건 대단히 불편하다. 바보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미 모든 게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버렸다. 배달의 가치는 편의와 경제성이다. 직접 사러 나가야 하는 귀찮음을 해결해주고 여러 가지 선택지 안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누군가에겐 생업이고 누군가에겐 없어서는 안 될 시스템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배달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많은 쓰레기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뿐이다.


요리와 전혀 친분이 없던 나는 아이를 낳고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주방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이건 또 다른 지옥문이 아닌가. 이유식을 만드는 것도, 먹이는 것도, 다 먹고 씻기는 것도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하루가 이유식으로 시작해 끝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사 먹일까도 했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고 대충 하고 싶지만 또 그게 안된다. 성격 탓일까. 아니면 이놈의 모성애 때문일까. 모르겠다. 누가 좀 대신해줬으면 싶으면서도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게 또 엄마 마음인 게 딜레마다.


식재료를 어디서 구매하느냐부터가 고민이었다. 유기농이라는 진로를 정하고 나서는 두 가지의 갈림길에 섰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유기농 마트냐 새벽 배송이냐. 유기농 마트는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이용할 수 있고 배송비 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조합원에 가입해서 매주 천 원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귀찮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새벽 배송은 반대다. 빠르고 편한 걸로는 이길자가 없다. 하지만 내가 직접 식재료를 고를 수 없고 유통기한이나 제조일자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우며 너무 많은 쓰레기를 생산해낸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엔 유기농 마트에 가입했고 산책한다고 나를 세뇌하며 장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소고기는 동네 정육점에서 한우로, 닭고기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무항생제 닭가슴살을 구입했다. 


쉽지 않았다. 무한 쳇바퀴였다. 육아는 1초도 쉬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인 와중에 유모차를 끌고 나가 마트와 정육점을 찍고 돌아와 이유식을 만들었다. 어떤 날은 동네 정육점에 내가 찾는 홍두깨살이 없다고 해서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왔다가 전화를 받고 다시 간 적도 있었다. 


닭가슴살을 사러 버스를 타고 이마트 트레이더스까지 갔다 온 날도 있었다. 유기농 마트엔 냉동만 팔았고 근처 식자재 마트는 무항생제가 아니었고 정육점은 닭가슴살만 따로 팔지 않았다. 고민하다 새로 가입한 유기농 온라인몰은 새벽 배송을 하려고 보니 내가 원하는 날짜에 이미 주문이 마감되어 있었다. 


온 우주가 나에게 직접 가서 사 오라고 등 떠미는 듯했다.


더운 날씨에 가방에 닭가슴살 1킬로와 베이글을 가득 담아 들고 오던 길에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들이 떠올랐다. 이게 과연 친환경적인 행보가 맞는 건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고 있나. 내가 이렇게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시간과 돈의 효율을 다 놓친 결과로 난 뭘 얻었지. 우리 아이에게 먹일 신선한 닭가슴살 1킬로를 단 하나의 포장용기만을 배출하고 사 왔다는 쾌거! 나는 그렇게 스스로 배달 기사가 되고 온라인몰이 되었구나. 이러니 매일 삭신이 쑤시지. 


집에 돌아와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까지는. 주말에 미리 사다 놓던지, 아이에게 고기를 며칠 더 늦게 먹이던지, 다른 고기를 먹였으면 될 일이었다. 하루 한 끼까지 완벽하게 먹이려는 그 마음을 좀 내려놓으면 되었을 텐데. 엄마가 처음인지라 내게도 시행착오가 필요한가 보다.


분명 조금 더 편한 방법을 찾을 거고 찾고 싶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내가 싫지는 않다. 유난 떠는 거고 예민하다고?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먹일 것들이 조금은 안전하게 믿을 있는 식재료였으면 하고 쓰레기를 조금은 쓰는 방식이었으면 하는 마음은 바꾸고 싶지 않다. 어쩌다 배달을 시킬지도 모르지만 이왕이면 포장재를 최소화하고 재활용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 내가 선택한 것들이 그래도 조금은 덜 쓰고 더 지속 가능한 가치로 향하길 바란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sns에서 검색하다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누군가의 포스팅을 본 적이 있다. 동생에게 또라이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알게 된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 난 그냥 좀 더 예민한 셀프 딜리버리 맘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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