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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11. 2020

불완전한 관찰 일기


집 안이 수영장 같다. 덥고 습한 공기가 집 안을 가득 메운다. 에어컨의 제습 기능을 아무리 가동해도 습도가 떨어질 줄 모른다. 꿉꿉하게 마른빨래들을 바라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이 불편하고 찝찝한 감각은 나의 사소한 일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마을이 물에 잠겨 지붕 위에 올라간 소를 구출하고 살림살이가 물에 젖어 엉망이 되어버린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번 비는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말을 들었다. 남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는 말은 어쩐지 먼 이야기 같지만 며칠 째 퍼붓는 비를 보고 있자니 그 속도가 무섭도록 피부에 와 닿는다. 불편은 감각이 아닌 감정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살던 대로 사는 게 맞는 걸까. 당연하던 것들을 계속 당연시해도 될까.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최소한 내가 누렸던 만큼이라도 동네와 주변을 누릴 수 있을까. 편의가 아닌 편안함을, 개인의 자율성보다도 기본적인 이동과 경험의 자유를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긴 한 걸까.


이건 너무 '확실한 불안'이 아닌가!







작년 봄에 한 달간 '쓰레기 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때의 난 '노 플라스틱(No Plastic)'이라는 주제로 살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관련 책과 자료들을 찾아보다 문득 내가 생산하는 쓰레기를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매일 산 것과 버린 것을 쓰고 사진을 찍고 간단한 일기를 남겼다.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사소한 쓰레기 일기는 나의 소비와 쓰레기 생산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써 내려갈수록 나는 조금씩 의식했다. 누구를 의식했느냐 하면 바로 일기를 쓰고 읽는 나 자신이었다. 일기에 덜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소수의 인원이 모여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살롱 그리고 한 달의 기록. 덕분에 나는 친환경, 리사이클링, 제로 웨이스트 같은 것들을 관심의 테두리 안에 넣어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임신으로 인한 극한의 입덧과 출산으로 그것들을 잠시 잊고 지냈다. 당장 나와 내 아이가 사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을 둘 수 없었다. 고된 육아 노동 역시 더욱더 그것들을 돌아볼 겨를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백일이 지나고 이백일이 지나 아이가 통잠을 자고 몸도 조금씩 회복되며 다시 마음속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것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닦아서 잘 보이는 곳에 가지런히 놓아볼까. 


다시 기록을 해보고 싶어 졌다. 관찰 일기를 쓰면 어떨까 하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우리 집 쓰레기 너무 많이 나와서 부끄러울 거 같은데"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렇긴 하지. 기저귀도 하루에 여러 개 나오고. 


"그래도 쓰고 싶은데..."


쓰고 싶은 건 쓰고야 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떡하지. 완벽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다면 쓰지 말아야 할까. 대단한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얼마나 줄이고 실천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데 쓸 자격이 있는 걸까. 괜한 죄책감만 갖게 되는 것 아닐까. 아니야, 그래도 안 쓰는 건 마음이 더 불편한데 어쩌지.


내적 갈등을 여러 번 오간 후에 나는 '불완전한 관찰 일기'를 쓰기로 했다. 어쩌면 불완전하다는 단어 뒤에 숨으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느끼는 이 확실한 불안보다는 불완전한 기록을 통해 불편한 마음을 덜어내고 싶다. 플라스틱 열 개 쓸 거 일곱 개 썼다며 하루를 기록하고 내가 발견한 친환경 제품이나 제로 웨이스트의 방식을 공유해보고 싶다. 누군가를 바꾸려는 거창한 계획 없이 그냥 내가 보는 내 일기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가볍게 가볍게...

불완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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