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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ul 03. 2020

비대면 시대의 아나바다 거래


감자 한 상자를 샀다.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은 감자라고 아파트 카페에 글이 올라왔었다. 1차를 놓쳐 아쉬웠던 터라 2차 글이 올라오자마자 댓글을 달았다. '챗 드릴게요~'. 익숙한 말이다. 동호수를 물으시더니 직접 배달도 해주신단다. 마침 같은 동에 사는 본 적 없는 이웃은 어느새 집 앞에 말없이 감자를 놓고 갔다. 감자는 크기도 크고 맛도 좋았다. 아기와 함께 사는 3인 가구가 먹기엔 꽤 많은 양이라 우리 가족은 며칠간 감자 파티를 해야 했다. 아직도 감자가 쌓여있다.


몇 번 쓰지 않은 종아리 마사지기를 드림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재빠르게 댓글을 달았다. 저요! 퇴근한 남편에게 주스 한 통을 들려 보냈다. 문 앞에 주스를 놓고 미리 꺼내놓은 마사지기를 가져왔다. '음료 하나 놓고 가요. 드세요.'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안 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집 안 정리를 하며 필요 없는 작은 책상 하나가 갈 곳을 잃었다. 당근마켓에 팔까 하다가 차량으로 옮기기 불편한 크기라 아파트 카페에 무료로 드림한다는 글을 올렸다. 바로 댓글이 달렸다. 공동현관 벨소리에 문을 열어주었다. 이웃은 문 앞에 내놓은 책상을 가져가면서 향초를 놓고 갔다. 남편은 그 향초가 맘에 들었는지 꽤나 좋아했다. 화장실 방향제로 잘 쓰고 있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 나는 이런 거래가 어색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돈과 물건을 주고받는 중고거래는 익숙했지만 댓글을 달고 채팅을 하고 물건을 주고받는다는 게 어딘가 익숙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집 앞에 슬쩍 들렀다 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들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도 이상했다.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고 대화를 나누는 남편과 다르게 난 아파트 카페에 가입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람을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나. 몇 번 해보니 이내 익숙해졌다. 육아를 하면서부터는 이것이 꽤 쏠쏠하게 느껴졌다. 아파트에 아기 있는 집들이 많아서 거의 새 것 같은 물건들이 많이 드림으로 나온다. 고작 한 두 달 쓰고 말 것들은 새 거를 사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다. 누군가에게 다시 주는 것도 기쁨이 되었다. 나눔 받았던 쏘서는 깨끗하게 쓰고 다른 이웃 아기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당근마켓에서 아기의자를 샀다. 새 상품을 내놓은 것인데 기존 판매가의 반값이다. 세일을 해도 살 수 없는 가격이고 디자인도 심플하고 예뻐서 바로 채팅으로 판매자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나 거래는 내가 하고 심부름은 남편이 한다. 아기 있는 집은 대부분 그렇다. 엄마들은 아기 때문에 외출이 쉽지 않기 때문. 아기 의자는 판매자와 시간이 맞지 않아 계좌로 입금하고 문 앞에 내놓은 의자를 찾아왔다. 중고거래 역시 완전한 비대면이 완성되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비대면 시대를 가져다주었지만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는 생활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정이 없어진 걸까.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더 많은 것들을 주고받고 있으니까. 모바일로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작은 성의 표시로 마음을 전한다. 그런 것들은 굳이 필요한 행동이 아님에도 하는 것들이기에 더 고맙고 뿌듯한 감정을 선사한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동네 이웃이라는 것 역시 옅은 유대감을 가져다준다. 


물건에 대한 소중함도 일깨워 주었다. 집 안에 필요 없는 물건이 생겨도 버릴 생각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쓰레기에 대한 죄책감도 아주 조금은 덜 수 있다. 무조건 버리는 게 능사라고 미니멀리즘을 착각했던 나의 생활 태도도 달라졌다.


어릴 적엔 아나바다 운동이 있었다. IMF시대에 돈을 아껴 쓰자고 생겨난 운동인데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말의 줄임말이다. (혹시나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서..) 그땐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는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아껴서 살아야 하는 행동강령이라고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눔 거래는 예전보다 더 진화해 선순환적인 문화가 되었고 어른이 된 나 역시 철이 들었다. 물건을 많이 사고 많이 버리는 건 더 이상 flex가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이 비대면의 아나바다 거래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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