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적 May 03. 2020

어느 불편한 저녁 식사



-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해 먹기 귀찮은데 시켜먹을까?

- 족발 같은 거 먹고 싶은데

- 족발 시킬까? 근데 배달시키면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 어떡하지. 

- 또 해 먹어? 너무 힘든데.. 락앤락 통 들고 가서 담아오면 매장에서 싫어할까?

- 응.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은데

-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대충 먹을까? 사 올까? 그냥 시킬까?



그래서 오늘 저녁은 어떻게 끼니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로 족히 30분은 이야기를 나눈 듯했다. 나는 매장에 미리 전화해서 통을 가져가서 담아와도 되냐고 물어보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고 남편은 매장에서 반기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나의 제안이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어떡할까 고민하다 일단 전화해서 물어보자 싶었다. 안된다고 하면 말면 되지. 


- 족발 시키려고 하는데요. 혹시 제가 통을 가져가서 거기에 담아 가도 될까요?


직원은 머뭇거리더니 사장님을 바꿔주었다.



- 그게 통에 잘 안 들어가서 애매한데요. 지난번에 통 다 들고 오셨던 분이신가요?

- 아니요. 저 처음 시키는 건데요.

- 아 그러세요. 밑반찬은 이미 포장이 되어있어서 안되고. 족발은 큰 통을 가져오시면 담아드릴게요.

- 네 알겠습니다. 10분 후에 갈게요.


남편은 中 짜리 족발이 넉넉히 들어갈 통을 챙겨주었고, 나는 쇼핑백에 통을 담아 다부진 표정으로 족발집을 향했다. 대놓고 뭐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매장 문을 열었다. 매장엔 손님이 없었고 배달 기사님이 음식을 받아 바삐 나가는 길이었다. 다행히 사장님은 친절하셨고 내가 챙겨간 통은 족발이 흐트러지지 않고 담기기에 넉넉했다. 안심했다. 


- 포장비닐 말고 이 쇼핑백에 담아주세요.

- 밑반찬이 기울어져서 쏟아질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 네 괜찮아요. 나무젓가락도 안 주셔도 돼요.

- 다음번엔 바쁜 저녁 시간대 조금 전이나 후에 주문해주시면 해드릴게요. 미리 썰어놨다가 기다려야 해서 바쁠 땐 좀 힘들어요.

- 네 알겠습니다.






방송에도 출연한 이력이 있는 그 족발집은 기름진 장충동 스타일로 맛집이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아주 꿀맛이었다. 상추도 많이 주고. 배를 만족스럽게 든든히 채운 저녁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왜 이리 불편하고 복잡한 것인가. 


바꿀 수 없는 현실과 그 날의 저녁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배달을 시켜먹을 때마다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일회용품들이 싫어서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통을 들고 간 건데, 내가 내 돈 쓰면서 힘들고 불편하고 눈치까지 보아야 하는 이 상황은 무얼까. 게다가, 이미 포장된 밑반찬이 있어서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게 쓰레기를 배출하고야 말았다. 무기력해졌다. 죄책감을 덜 수도 없었다. 편의를 잃어버렸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구나. 


평소엔 배달을 잘 시키지 않는 편이었다. 남편도 내 생각에 동의를 해주었고 우리는 주로 집밥을 해 먹었다. 하지만, 언제나 해 먹기만 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제 100일을 갓 넘긴 아이를 키우는 초보 부부인 우리에게 외식은 아직은 두렵고 꿈만 같은 일이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육아를 힘들게 이어가고 있는 탓에 주말엔 거의 남편이 음식을 준비하는 편인데, 쉴틈 없는 출근과 육아 사이에서 그도 무쇠팔 무쇠다리는 아니다. 그렇게 가끔 유혹이 도사린다. 시켜먹을까.


대단한 환경운동가는 아니다. 쓰레기를 얼마나 잘 줄이고 사느냐고 묻는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유일하게 잘 지키는 건 집에서 아기 물티슈 쓰지 않기.) 다만,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소비할 때마다 그 안에 담긴 물건보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포장이 더 눈에 먼저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살롱을 하면서 몇 권의 책을 읽고 쓰레기 일기를 썼던 작년 이맘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내 안에 이 죄책감 비슷한 불편함이 심어진 것이. 그리고 아이를 낳은 지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살아갈 환경이 최소한 지금만큼이라도 유지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미약하게나마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불편하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너무 불편했다. 육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서 10분 거리의 족발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편의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금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장사하는 사람들에겐 생존이 달린 문제고 소비자들에겐 이미 익숙해져 버린 편리함이다. 빨라진 속도에 기여하는 일회용품들이.


재활용 가능한 소재의 포장용기가 기존의 것보다 싸게 대량으로 생산되고 배달앱 플랫폼이 그걸 사용하는 소상공인들에게 혜택으로 돌려준다면 어떨까? 리사이클링 브랜드만 모아놓은 쇼핑몰을 만들어 소비를 확장시키면 어떨까?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는 음식점만 모아놓은 배달앱을 만들면 어떨 것 같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망할 것 같다고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대면 시대의 아나바다 거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