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뒤돌아보면 참 자연스럽고도 낯설다. 숱하게 고민했던 밤들의 감정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그때와 지금의 나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그때의 밤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아침도 있는 거겠지만.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이거 정말 괜찮은 콘텐츠다.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괜찮은 브랜드 뭐가 있지. 책도 좀 읽어보자. 그래 정말 경각심을 가져야 해. 쓰레기 일기를 써보자. 제로웨이스트 숍에도 가볼까. 좀 비싸긴 하네. 고기 좀 안 먹어보고 싶어. 우유도 끊을까.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
그리고 난 까맣게 잊었다. 입덧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은 그 모든 걸 잊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날 이끌었는데 결국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물론 그때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이다. 맛을 보는 정도로는 마음이 불편해졌고 각을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했던 것 같다. 그냥 온 우주의 기운이 그랬다. 그냥 우리 아이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이런 지구에 널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해지니 모든 것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한 번 말하는 게 어려웠지 두 번은 어렵지 않았고 세 번, 네 번 가속도가 붙어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나의 생각과 실천이 나의 동력이 되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내 맘 속 내적인 연대가 되었다. 이젠 나를 계속 걸어가게 하는 길이 되고 있다.
급격한 생활 변화에 당황스러워하던 남편마저 익숙해져 가는 걸 보니 나 이제 정말 노련한 초보자쯤은 되는 것 아닐까. 텀블러는 물론이고 음식을 사 먹을 때도 용기를 가져가서 담아오는 일이 생활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당연하게 쓰던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을 밀어냈고 그 자리를 마음 가벼운 천연 비누와 다회용기가 대신하고 있다. 고기와 우유를 끊었고 해산물도 멀리하고 있는데, 무조건적인 절제가 아니라 건강한 채식을 더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모든 걸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누군가에게 보이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정말 좋은 아카이브가 되고 있다.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를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볼 수 있게 하는 거울이 되고 있다. 이런 만족감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마음의 풍요로움이다. 돈으로 누리는 풍요보다 몇 배는 더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중독성을 지녔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낸 목소리들이 나에게 더 다양하고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로 찾아왔다. 제로웨이스트를 콘텐츠로만 바라보던 시간을 자양분 삼아 지금은 내 안의 가치를 잘 다듬어 그것을 콘텐츠로 만드는 일로 나아가게 되었으니, 그때의 시간도 허투루 보낸 건 아니었나 보다.
요즘의 나는 그렇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