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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어

by 흔적


과자나 라면을 쟁여두고 생각나면 아주 가끔 꺼내먹는 남편과 달리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게 나다. 그리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도 있으면 그냥 먹게 되는 게 싫어서 쟁여두지 않는다. 정 먹고 싶으면 마트에 가서 과자를 딱 한 봉지만 사 와서 다 먹고 끝.


이런 루틴은 생뚱맞게도 완벽주의적인 나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의 계획대로 나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절제와 쾌락 사이에서 균형의 끈을 팽팽하게 묶어둔 듯한 완벽함. 이 느껴진다.


완벽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완벽함을 느낀다는 건 남이 봤을 때 단 하나의 결점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오롯이 내 마음이 느끼는 만족점이 기준이 되고 그것은 나의 예상대로 흘러갈 때 최고점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걸 느끼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욕심을 부리게 되는 데서 피로는 시작된다.


나는 요즘 내가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도저히 완벽할 수 없는 육아 그리고 채식을 하면서 자꾸 내 마음의 완벽을 추구하려 나를 괴롭히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완벽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여유를 찾을 수 있다면 참 쉬울 텐데, 사람의 성격이라는 게 마음먹는다고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서 무조건 버리기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한창 야근을 하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그때도 손에 꽉 움켜쥐느라 여유를 갖지 못했던 일개미가 아니었나 싶다. 정답이 없는 일을 하면서도 덜어내야 할 것을 덜어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완벽주의적 피곤함을 달고 살았었지. 일이 나를 그렇게 만든 건지,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게 체화되었던 것들은 나의 무의식 어딘가를 아직도 떠돌고 있는 걸까.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고 채식 '지향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요즘인데, 그러다 보니 사소하게 남편과 부딪히는 일이 생겼다.


"고기 좀 사야 하는데.."


평소 회사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남편의 한 마디에 내 인상은 순간 일그러졌다. 몇 분간의 정적. 그리고 가시 돋친 대화들이 오갔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일방적인 태도는 꽤나 폭력적이었다. 채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가감 없이 불쾌감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나의 뜻에 동참해 이미 채식의 비중을 늘리고 육식을 많이 줄이고 있는 그였다. 남편에게 못된 말을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나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혼자 살았다면 나만 안 먹으면 그만 이었겠지만 난 혼자가 아니라는 걸 급한 마음에 잠시 잊고 있었다. 나에겐 함께 밥을 먹는 식구가 존재했고 우리의 팀플레이는 서로를 고려해 천천히 흘러가야 한다는 걸 나의 멍청한 완벽주의는 모르고 있었던 거다.


나의 채식을 어디로 흘러가는가. 잠시 멈춤이 필요한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고 남편이 좋아하는 아니, 우리 둘 다 좋아하던 순댓국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깔끔한 국물 맛이 좋은 곳이라 이사 와서 단골이 되었던 식당이다. 평소대로 순대는 빼고 고기만 넣은 순댓국 2인분을 주문했고 부추와 들깨가루를 푸짐히 넣어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맛이 없었다. 늘 같은 그 맛인데 그 날 따라 누린내가 나는 듯해 고기의 반 이상을 남편에게 덜어주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누린내가 나는 거 같지.."


"너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래."



잠시 멍해졌다.


글쎄, 아직도 가끔 고기는 먹고 싶은 것 같기도 한데, 진짜 내 입맛이 변해버렸나. 나는 진짜 고기 맛을 좋아하지 않게 된 건가, 그렇다고 착각하는 걸까, 착각하고 싶은 걸까. 흠, 뭣이 중헌디?


인생은 장기전이지. 빠른 걸음으로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진 사람처럼 가면 언제가 지치기 마련이다.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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