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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02. 2018

‌우리는 왜 일상에 집착하는가



거창한 미래보다 오늘의 하루가 더 중요해졌다.

일상이란 어떤 의미로 재정의 될 수 있을까?









일상 속 행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로 떠올랐고, 우리는 글과 그림, 영상 속에서 다양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현재 진행형의 '하루'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일까. 왜 미래가 아닌 현재를 더 바라보려 하는 걸까.


일과 삶의 균형, 소위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 직장을 선택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오늘의 빵 한 조각과 커피 한잔을 포기할 수 없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집은 퇴근 후 피곤한 몸을 뉘이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여행은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가야만 하는 삶의 동력이 되었다. 얼마나 머무를지 모를 월세방도 대충 꾸미고 지내고 싶진 않아졌고, 그저 그런 카페에서 맛없는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아졌으며, 빠듯한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어디론가 떠나는 경험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좀 더 쫀쫀하게 

일상의 밀도를 높여가는 방식을 이리저리 탐구하는 중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건'보다, 시간을 보내고 공간에 머무는 다차원적인 '경험'이 더 고급스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바쁘고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휴식과 망상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잠깐 머무는 공간에도 물건들이 진열된 배열과 각도, 분위기의 온도에 신경을 쓴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내가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사적인 감각과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 감정들이 일상의 관심사를 결정하고, 호불호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개인의 취향은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남들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하며, 그 선택이 또 다른 선택을 낳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라는 사람을 완성시킨다. 나만의 기준, 나만의 취향은 생각보다 강력한 것이어서 누구를 만나 어떤 맛집에 갈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세상사에 대한 나의 관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의 색과 질을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베스트셀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비단 대형서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분야의 플랫폼들이 보여주는 큐레이션과 차트 나열이 포괄적으로 해당될 수 있을 것 같다. 유명한 작가의 베스트셀러는 여전히 인기가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독립서점은 매우 적은 양의 책으로 대형서점이 주지 못하는 감성을 채워주기도 한다. 할인도 포인트 적립도 해주지 않고 영업시간도 일정하지 않은 곳들을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매력적으로 느낀다. 굳이 교통도 불편한 골목길 한켠의 독립서점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름 모를 신진 작가의 일러스트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자칫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감정들을 서술한 에세이 한 권을 구매하기도 한다. 독립서점과 독립 서적들은 느린 듯 빠르게 퍼져나갔고, 지금도 역시 엎치락뒷지락하며 현재 진행중이다. 때로는 책 자체가 아닌 책을 경험하는 방식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방문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서점 주인이 선별한 큐레이션이 그 서점의 성격을 결정하고, 1:1 상담을 통해 책을 추천해주거나, 블라인드 방식으로 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책을 사는 과정은 책 안에 쓰인 글만큼이나 특별하고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책 자체가 목적이 아닌, 과정과 수단이 되어 관심사나 분야가 비슷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렇게 형성되는 커뮤니티는 주말에 취미를 위해 모이는 직장인 동호회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된다. 물건이 아닌 경험이 중심이 되어 공간의 쓸모를 새롭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며, 각자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되고 있다. 


백화점 대신 골목길을 찾아가고, 럭셔리 리조트 보단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 유명인사의 성공담 대신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젊은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새로운 경험을 쌓아 올리고 나만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나와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중요한 건 소수의 이야기로 치부했던 삶의 방식과 선택들이 전체에 미묘한 틈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 양날의 검이 존재한다. 



일상의 소소함에만 머무는 가벼운 책이 과연 소장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될 때도 있고, 서로 비슷비슷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야기의 화두와 분야에 대한 다양성과 깊이보다는 SNS에서 인증될 수 있는 마케팅적인 관점이 모든 문화와 디자인, 예술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소비와 문화는 삶의 질이 올라갈수록 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를 탓하기 전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일상의 평범한 것들을 되돌아볼 시간의 권리를 갖지 못했었나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멈추기보단 나아가야 했고, 무어라도 성과의 숫자로 보여주어야만 했으며, 재촉되는 시간에 무한대로 시달리면서 모두의 마음은 번아웃(burn out)되었다. 받은 월급보다 더 많이 일해서 최고의 위치로 올라가는 것이 결코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 한켠을 위로할 '한마디'를 찾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이 중요해졌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만큼 지하철에서 듣는 플레이리스트도 중요하고, 카페에 앉아 잠깐 읽는 책 한 권도 중요하다. 내 방의 향을 지배하는 디퓨저도 중요하고, 매일 운동하는 시간도 너무나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은 삶의 목표와 성공에 비해 너무나도 하찮고 쓸데없는 것들 일지도 모르지만, 성공의 의미에 의구심을 품는 시대가 되면서 미래가 아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오늘 하루를 즐기기 위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써버리려는 마음가짐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쌓아 한 달을 만들고, 일 년을 만들어 내 라이프스타일을 내가 구성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오늘 하루가 중요한 만큼 매일의 일상을 쌓아 올려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관점도 현재를 위해 미래를 버리는 관점도 아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각자 삶의 주인이 자신인 만큼 그 방식의 적절함이라는 것은 철저히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다만 스스로의 균형이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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