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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an 01. 2019

만연한 우울감



우울한가요.



우리는 우울한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우울한 시대일까. 그 어느 때 보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넘쳐나고,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과도할 정도로 도처에 널려 무엇이든 허락되는데도 불구하고 우울한 감정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딱히 누가 얼마만큼 우울한 것인지는 손에 잡히지 않지만, 어딘가 누군가 조금씩 우울한 것만 같은 낌새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일상의 사소한 모든 것들을 다 끌어모아 재밋거리로 활용하고 각종 딴짓과 취미가 돈벌이가 되어주기도 하는 컨텐츠 폭발의 시대가 되었는데, 우울감은 더 깊어져 가는 것만 같다. 더 많은 개인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같은 책을 집어 든다. 어떤 이야기가 궁금해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 책을 읽는 걸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우울한가요. 그 질문이 나에게 돌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우선은 우울하지 않다고 말할 것 같은데, 어느 한 구석에 우울한 감정을 담고 있지는 않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글쎄요.' 혹은 '잘 모르겠어요.'로 흐릿해질지도 모르겠다.










왜 우울할까?



해마다 우울증 환자의 수가 얼마나 증가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다른 강도의 우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우울한 감정은 삶에 대한 나태한 마음가짐일까. 더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고 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패배감의 결과일까. 얼마나 더 많이 벌어야 이 우울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더 많이 갖추고 더 많은 돈을 쓰며 살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까. 남들은 꿈도 못 꿔볼 비싼 물건을 사고 비싼 경험을 하게 되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처럼 삶의 포장지 안에 숨겨진 내면은 한없이 굶주리고 아파한다. 세상은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한 동기부여로 냉정한 절망감과 엄격한 행동강령을 과격하게 내보인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괜찮지 않은 것들'이 괜찮은 척 가리워진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흐름에 나를 맞추면서 급급하게 살아가다 보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것들이 지나고 나서 불쑥불쑥 마음을 찌른다. 누군가의 왜곡된 시선과 오해로 상처 받고 억울한 내 영혼은 나를 방어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할퀴기도 한다. 


그렇게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도 무너져버린 마음을 드러내고 진심 어린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 간다. 현실에 지쳐갈수록 누군가의 한탄 섞인 우울한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는 사라진다. 그렇게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들이 쌓이고 또 싸여간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옛말은 퇴색되고, 요즘은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말이 더 그럴싸해졌다.










달라진 위로와 공감의 방식



정신 차리라는 채찍질도 다 잘될 거라는 빈 껍데기뿐인 인사치레도 더 이상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 우울감을 모르는 사람들의 끝없는 긍정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 만연한 우울함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애써 마음을 치유하고 위안을 받을까.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너무나 사소해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었던 수많은 상황들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감정을 느껴 사람들은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금세 알아채고 공감한다. 


우울함을 드러내고 그것에 공감하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가장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 독립서적들과 차트 밖에 있는 노래들이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부딪혔던 과정 속에 멍든 내면의 이야기들이 서로 다르게 쓰인다. 희망찬 비전도 성공 비법도 없지만, 괜찮은 줄 알았던 누군가의 이면에 감춰진 사적인 감정들이 공유된다. 아름답게 포장된 말보다는 지극히 담백하고 일상적인 표현이 더 크게 공감으로 다가온다. 


가수 우효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은 '하고 싶은 말은 해야 돼. 안 그러면 정말 병이 돼'라거나, 지나간 상처를 페이퍼 컷(paper cut)에 비유하며 '무심히 나를 베었던 기억들이 떠나갔으면 보이지 않는 선들이 지워졌으면'이라는 식으로 평범하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는 감수성을 전달한다. 크루셜스타의 유학이라는 제목의 노래에서는 '유학이라도 가면 좀 나아질까'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언뜻 보면 가벼워 보이는 이 말이 한 번쯤은 마주한 상황에서 해봄직한 생각이라는 점에서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노브의 '회사 다녀요'는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공감하게 하는 담백한 가사 중에서는 가장 절정이 아닐까 싶다.





티 낼 수조차 없는 세상에 더 힘들어요

언제부터였는지 멋지게 사는 건 바라지도 못해요 

이젠 그저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웃어야 해 웃어야 돼 웃어야 눈물을 감출 수 있어요

참아야 해 참아내야 돼 참아야 아픔을 가릴 수 있어요





자신의 고된 마음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방식은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한없이 슬픔 속에 빠져들게 하기도 하지만, 우울한 감정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다. 부정적이기에 언급을 기피했던 우울함에 대해 그냥 있는 그대로 느껴보고 솔직히 말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울은 불행과 교집합을 지녔을지는 모르겠지만, 동의어는 아니다. 오히려 우울한 감정을 마주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을수록 불행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우울한 감수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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