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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pr 05. 2022

1년간의 객원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며



지난 1년 동안 환경 뉴스 플랫폼 ‘플래닛타임즈’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했다. 일주일에 두 편의 기사를 빠지지 않고 기고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들을 쉼 없이 달려와 마무리하고 나니 소회의 글을 남기고 싶어졌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던 과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급작스럽고 낯선 변화였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sns에 환경 계정을 만들었고 본격적인 삶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프리랜서로서의 일상을 적어내려 가던 브런치에는 환경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환경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넷플리스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연달아 보았다. 내 삶은 달라진 게 없었지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모든 게 달라졌다. 그렇게 브런치에 쓰던 에세이가 발판이 되어 기사를 쓰게 되었다. 


신기하고도 설레는 경험이었다. 가치관과 업이 교차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은 한때는 좋아했던 것이지만 삶의 가치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앞에 옳고 그름의 판단은 무의미했다. 일정과 사람에 쫓겨 ‘이게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늘 품고 있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기에만 급급했던 시간들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에 있어서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이건 허황된 꿈도 헛된 종교도 아니었다. 당장 우리에게 예견된 현실이고 나와 내 아이의 삶이 걸린 일이기에.


하지만 일은 일.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과 질을 모두 지키며 규칙적으로 기사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팩트만 전달하는 형식이 아닌 주관적 해석과 관점을 버무려 함께 전달하는 자율성은 때로는 더 무겁고 고민스러운 지점이 되었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환경 전문가도 아닌 내가 환경 기사를 잘 쓸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언제나 그랬듯 ‘다르게 보기’를 제안하는 것뿐이었다. 오랫동안 트렌드를 분석하고 브런치에 글을 써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데 주력했다. 당연한 쇼핑, 당연한 여행, 당연한 배달 음식 등등.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가리워진 풍요의 진실을 밝혀내고 싶었다. 쏟아지는 환경 이슈들을 조사하고 그 안에서 관점을 찾아내며 또다시 디테일을 맞추는 과정들이 이어졌다. 맥락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나름의 루틴을 만들었다. 완벽한 글은 아니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고 믿었다.


이 일 역시 업이기에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야 했고 더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 1년 만에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둔다는 것이 반드시 안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덕분에 많이 공부했고 나를 훈련했으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원섭섭하다는 기분을 이럴 때 쓰는 걸까. 


한동안 멈췄던 사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의 이야기들을 가볍고 잦게 꺼내볼 시간이 된 것 같다. 역시나 내 시선 끝이 향하는 곳은 환경이다. 기승전환경. 나는 이 주제가 제대로 꺼내어보지도 못한 채 피로감을 느끼는 대상으로 오염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더 즐겁게 쓸 것이다. 이 문화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고 어두운 면들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과학이 증명하고 있고 피할 수 없는 미래이기도 하다. 다만 포기할 수는 없기에 목소리를 낼 원동력으로 삼을 뿐이다. 때로는 불편한 마찰들이 생길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뭐 어쩌겠는가. 인생에도 희로애락이 있듯 모든 것에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툭툭 털고 일어나 가벼운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나가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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