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바빴다. 프리랜서 육아맘이라는 내 포지션의 기본값 자체가 원래 시간이 늘 모자라지만 요 며칠은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언제나 그랬듯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았고 아이 하원 후에는 놀이 돌봄 선생님이 오셨다. 주말에 하루는 가족과 보내고 하루는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고 카페에 나가 일을 했다. 다가오는 날짜가 조급하게 느껴졌다. 나의 일상은 빠듯하게 흘러가지만 일은 일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스케줄을 조절하기보다는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때로는 과도한 열정과 시간을 부어서 일을 할 때도 있는데, 내 몸 안에 일하는 DNA가 그렇게 맞춰져서 이걸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요즘의 나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돈을 벌고 또 그다음 일을 생각하고 내게 주어진 일, 내 아이의 일, 남편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그게 다였다. 내 가치관과 생활을 바꾼 이토록 다급한 기후위기 앞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돌이켜보면 또 어느새 한 발짝 멀어져있었던 것이다. 언제 이렇게 무감각해졌지.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말이다. 안 보기 시작하니 한없이 안 볼 수도 있는 것이었구나. 무관심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구나.
왜 그럴까. 도대체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길래. 일이 바쁘고 육아가 힘드니 일상은 당연히 버거운 존재다. 아침엔 부랴부랴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널브러진 집안을 잠시 정리하고 재빠르게 노트북 앞에 출근한다. 아무리 집중해서 작업 속도를 내려고 해도 월요병만큼이나 무서운 오후 4시는 금세 찾아온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와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목욕을 시킨다. 아이가 잠든 저녁 9시가 되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방전 상태가 되어버린다. 일은 물론이고 운동을 할 체력도 남아있지 않고 때때로 혈액순환이 안돼서 새벽에 깬 적도 있다.
정말로 나에게 시간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온전히 나의 탓도 있다. 하루를 잘 보내고 싶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은, 완벽하지 않은 나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성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일하면서 훈련된 잘못된 프로 의식이 쉬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처럼 나를 절정으로 내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게 기후위기와 무슨 상관이냐 하면 아주 밀접한 관계의 굴레다. 긴 노동 시간과 무한 경쟁, 더 잘 살고 싶은 욕심 등 현대의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 과정들이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에 모두. 인간이 건강하지 않은 삶을 산다는 건 결코 자연을 돌아볼 여유가 없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멀리 보는 혜안을 사라지게 만든다. 성장하고 사회에 나가 일하며 체득하게 되는 가치관이라는 것은 결국엔 모두 돈이다. 모두가 오직 하나의 수단을 바라보며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우리가 꿈꾸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늘 시간은 없고 돈에 쫓기는 삶이 누구에게나 강도만 다르게 주어질 뿐이다.
그런 삶 속에서 원하게 되는 건 당연히 망가진 몸을 회복할 수 있는 휴식, 도심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여행, 순간순간의 편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예쁜 쓰레기 소비 같은 것들이다. 또다시 돈과 시간, 건강, 여유가 사라지게 되고 쳇바퀴처럼 돈을 벌고 시간을 산다. 지구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내 삶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쾌락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가 된다. 어떤 것도 완벽하게 채워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이것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
인간도 지구의 일부다. 인간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데 어떻게 모두의 삶을 구할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 이건 너무 무리한 요구다. 하지만 슬프게도 엉망이 된 우리의 터전을 대신 구원해 줄 로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삶은 내가 챙길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지금 당장 삶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관성에 빠지지는 말아야지. 이 풍요에 익숙해지지 말아야지.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달라졌던 그 원동력을 잃지 말아야지. 조급하게 살지 말아야지. 무엇보다 잘 살아내야지. 부지런하게 잘 사는 거 말고. 시간을 꽉 채워서 잘 쓰는 거 말고.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는 거 말고. 비싼 물건으로 나를 치장하는 거 말고.
그런 거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