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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May 10. 2022

서울은 모든 곳이 관광지야


소유와 유행을 좇던 마음을 멀리한 지 일 년 반이 지났다. 나의 욕심은 여전하다. 내려놓아서가 아니라,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것들에게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을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를 더 설레게 하고 그것들이 더 괜찮다고 느낄 뿐이다. 다른 것들이 욕심을 채워주기 때문에 굳이 갖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 뿐이다.

오랜만에 사람들로 가득 찬 백화점에 발을 들였다. 그것도 핫한 신상 백화점. 평일 점심시간이라 어딜 가도 북적였다. 꽤 넓은 공간은 사람이 꽉 차 좁게 느껴졌다. 어디가 어디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눈에 들어온 건 사람들의 옷차림새였다. 신발과 가방, 옷매무새가 모두 요즘의 것이었고 새것이었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은 또 다른 새로운 물건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힙하다는 건 모두 모인 집합소이니 그럴만했다. 비싼 땅 위에 세워진 으리으리한 건물 안에서 비싼 옷을 입고 식당에 줄을 서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기이했다. 좁은 자리에 몸을 구겨 앉아 인기가 좋은 메뉴를 입에 넣고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소비의 팝콘이 터지고 있는 듯했다. 감성 혹은 취향이라는 포장이 모든 욕심을 채워내도 괜찮다고 등 떠미는 듯했다. 나의 가치관이 아주 사소하게 느껴졌다. 제로웨이스트의 z도 꺼낼 수 없을 것 같을 만큼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비웃음을 당할 것만 같았다. 내가 이 동네에 혼자 사는 직장인이었다면 지금처럼 내 일상의 루틴들을 그대로 지켜갈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아마도 아주 많이 흔들렸을 것 같다. 

"서울은 모든 곳이 다 관광지야."

남편이 말했다. 그러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별말 아닌 말인데 너무 맞는 말이라 감탄했다. 그의 지나가는 말은 진실일 때가 많다. 정말이다. 이 도시에서 발을 붙이고 살만한 곳이 어디가 있을까. 모든 것이 둥둥 떠있는 것 같다. 마음도, 공간도, 관계도 둥둥. 발을 땅에 붙인 채 제대로 나의 호흡을 가다듬고 살기 어렵도록 도시의 무드가 흘러간다. 나만의 중요한 영역들은 아주 작게 느껴지고 그냥 지나쳐도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더 쉽고 자연스럽다. 아차 하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흘러간다. 그게 더 좋은 거라고 착각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백화점 안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에 또 다른 줄을 발견했다. 이번엔 맛집이 아니었다. 포토존이었다. 딱 그 자리에 그렇게 서야만 공간의 풍경을 한 번에 담을 수 있었다. 고객들이 sns에 올리기 좋은 사진의 위치와 각도까지 정해주니 이 얼마나 친절한 백화점인가. 사진 행렬은 전시에서도 이어졌다.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잠시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들은 정말 작품에 관심이 있는 걸까. 이곳은 예술의 공간일까, 소비의 공간일까, 진짜로 좋은 공간이란 무엇일까.  

요즘의 공간들은 모두 소비욕을 충전시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예술과 문화를 콘텐츠로 이용한다. 이 모든 것들이 경계 없이 버무려져야만 흥한다. 흥할 대로 흥한 공간을 바라보며 나는 왜 신나지 않았을까. 이방인이 된 듯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꼭 이렇게 해야만 흥하는 걸까. 이 흥이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흐를 수는 없을까. 사람들이 줄을 서며 그토록 원하는 건 새로움일까, 수집욕일까. 아침 일찍 마트 앞에 서는 포켓몬빵 줄과 뭐가 다르고 같을까. 

한때는 나도 전부다 좋아했던 것들이지만 이젠 내 맘속에서 너무나 가볍게 흩어져 버린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나 로망은 깨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나의 취향들이 못생겨진 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내 안에서는 더 섬세하게 나만의 알맹이를 쌓아올리고 있다. 혹시나 하고 둘러본 카페 메뉴판에서 오틀리 라떼를 발견하곤 반가웠다. 매장을 둘러보니 유리잔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냉큼 줄을 섰다. 빨대는 거절했다. 내가 마셔본 라떼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넓지 않은 자리에 앉아 마시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정말이지 내려놓은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잘 살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진짜 잘 살아내는 것이 과거의 생활방식은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을 뿐이다. 충분히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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