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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May 31. 2022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해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떠나지 못하고 아등바등 사는 사람도 마음 한구석엔 영화 '리틀 포레스트'같은 삶에 대한 로망을 간직한 법이다. 매일 아침 오르는 지옥철을 벗어나 마당을 여유롭게 거닐며 나무와 새에게 인사하는 일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게 된다. 막상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꽤나 무료하고 막막할 텐데도 말이다. 친구가 제주나 속초 혹은 또 다른 그 어딘가로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아주 살러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부럽다는 말부터 내뱉겠지만, 막상 현실이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장되며 '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로 옮겨가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과연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럽게 잘 살 수 있을까. 처음엔 도심을 떠나고 싶었다. 환경 파괴와 이기심으로 버무려진 이 동네의 삭막한 단정함이 싫었다. 일렬로 줄지어 세워진 아파트는 담뱃갑을 보는 듯했고 창문은 닭장처럼 보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보도블록은 나의 상상력을 더 납작하고 단순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된 듯했다.  주말농장에서 느끼던 흙냄새가 우리 집 마당에서 난다면 어떨까. 작은 텃밭이 있는 집에 사는 건 욕심일까. 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야 가능한 일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 혼자 무해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사는 일이 과연 더 친환경적인 삶을 선택하는 일일까. 에너지 효율을 따져보면 전원주택에 사는 것보다 아파트가 훨씬 더 낫다는 주장은 진짜일까. 에너지 자립마을에서 공동체적인 삶을 살며 육아와 일의 고단함을 함께 나누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비교적 작은 소도시에 살면 시골과 도심에서 아쉬운 것들을 절충할 수 있지 않을까. 뭐 해서 먹고살아야 하지. 유튜브나 할까. 아니면 카페.


서울에 살다 고작 경기도로 왔을 뿐인데도 나는 결핍을 느꼈다. 나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일까. 처음엔 미술관이 없는 탓이라고 느꼈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경험이 결핍된 것이로구나. 예쁜 카페와 편집숍이 적어서 아쉬운 거구나. 제로웨이스트숍 마저도 서울 핫한 곳에 먼저 생기는 걸 보면 여긴 정말 고이기 쉬운 곳이구나. 그러다 육아에 대한 번아웃과 일에 대한 고민이 함께 교차되며 나를 찾아왔고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쉬는 법을 모르는 나는 미세한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안정일까 아니면 너무 안정적이라서 지겨운 걸까.


주말에 만날 사람도 없었지만 혼자 길을 나섰다. 예전엔 꼭 누구를 만나야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거 따지는 사이 내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까워 그냥 무작정 나갔다. 나갈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나가자는 마음으로. 어디를 가야 내 맘이 좀 후련해질까 고민하다 정한 행선지는 연남동이었다. 팟캐스트 녹음하러 선배와 자주 가던 그 길을 다시 간 건 비건 식당과 제로웨이스트숍 투어를 하기 위해서였다. 


꽤 인기가 좋은 비건 식당은 조금 이른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꽤 많았다. 레모네이드 한 잔과 두부 시저 랩 하나를 주문하고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처럼 혼자 온 손님,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 친구들과 함께 온 외국인 등 서로 다른 조합들이 한 공간에서 재잘거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낯설고 신선하고 오랜만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괜히 설렜다. 왜 설렐까. 도시의 감각이었다. 매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오가고 쉬지 않고 조금씩 변화하는 흐름이 느껴지는 바쁜 도시만이 줄 수 있는 그 감각. 난 그런 감각이 그리웠고 그것에 너무 익숙했던 것이다. 돈을 쓰던 벌던 뭔가가 진전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만으로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고 영감을 얻었다는 내적인 자극은 꽤나 중독적이어서 조금만 느슨해져도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너무 오래도록 열심히 일해온 탓에, 어릴 때부터 학교를 다니며 9 to 6의 삶을 훈련받아온 탓에 시간을 부지런히 쓰지 않으면 몸과 정신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체내화되었나 보다.


나는 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의 감각을 사랑하지만 그것들이 자꾸 에너지와 물건을 과도하게 소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무쌍한 변화가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쪽으로만 향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납작한 변화다. 나처럼 쉬는 걸 못 견디는 워킹맘 친구와 시골에서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대화의 결론은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해."


생산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물건을 생산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만 한다는 뜻은 아닐 거다.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서 무언가를 생산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다음 걸음을 걸어가는 삶의 방식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며 내게도 정답은 없다. 휴식도 계획하에 시간을 내어 컨셉 좋은 공간에서 만끽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도시인들이 과연 소비를 줄이면서 자신의 생산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그래도 어떻게든 찾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치열하게 고민하며 만들어내는 나의 생산성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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