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동물원을 가지 않는다는 결정은 매우 힘든 일이다. 여전히 많은 갈등 속에 있다. 하지만 동물원이 아이의 환경 감수성을 더 잘 키워줄 공간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신한다. 좁은 우리 안,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갇힌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서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 과연 동물에 대한 사랑이 될 수 있을까. 글쎄. 동물들은 편의점 삼각김밥처럼 원할 때 언제든 집어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잖아.
동물원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자연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는 걸 이번에 확인했다. 그건 바로 환경 단체에서 진행하는 생태관광 투어였다. 평소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던 인천녹색연합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어느 날 내 눈에 확 들어와 버렸다. 사실 인천 시민은 아니라서 참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환경 관련 정보를 얻고자 팔로우하던 곳이었는데, '생태투어'란 단어에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어버렸다.
'인천 시민이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나요?'
댓글을 남겼고 자리가 남아서 참여해도 된다는 답을 받았다.
우리 아이를 위해 이보다 좋은 프로그램은 없겠다 싶어 주말에 온 가족을 데리고 총출동했다.
이번 회차는 인천의 깃대종인 저어새에 대해 공부하고 탐조하는 시간이었다. 깃대종은 각 지역에서 특징적인 야생동물로 특별히 보호해야 할 동물을 지정한 것인데, 저어새는 개체수 1만 마리가 채 안 되는 멸종위기 1급에 해당하는 동물이다. 저어새가 인천의 깃대종이 된 이유는 홍수 방지를 위해 만든 남동 유수지에 2009년부터 저어새들이 날아와 터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난 새에 대해 잘 몰랐다.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새를 무서워했다. 아는 새라곤 비둘기, 참새, 갈매기, 오리 정도가 전부이니 저어새는 당연히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도심의 비둘기는 귀찮은 존재고 새들은 피하는 대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마음가짐을 바꾸니 새가 달리 보였다. 환경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각각의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생태계의 연결고리 안에서 자기의 몫을 다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 몫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어새들이 저수지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저어새가 저어새인 이유는 부리를 벌리고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행동 때문인데, 까맣고 긴 부리 때문에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 언제 어디선가 저어새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새인지 관심도 두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린 건 아니었을까. 이제는 넓적한 밥 숟가락 같은 저 부리를 보면 바로 '저어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탐조는 새들 가까이에 다가가 그들을 본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서식지를 멀리서 바라보며 저어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었다. 난 자연을 헤치지 않는 이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눈앞에 저어새 한 마리를 잡아와 쓰다듬으며 먹이를 줘보면 아이가 더 신기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다. 내가 인간의 한 손에 잡힌 저어새 한 마리라면 내 기분은 어떨까. 너무 위협적이고 괴롭지 않을까. 무력에 의해 순응할 뿐인데, 그걸 좋아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어떨까. 동물원에서 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아이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부모는 내 아이가 동물을 친근하게 여긴다고 착각하기 쉽다.
우리는 아이가 저어새 한 마리라도 더 봐야 한다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쌍안경 초점조차 제대로 맞출 수 없는 3세 아기를 데리고 애써봤자 뭐가 달라질까. 그냥 우리는 그곳을 자연 놀이터처럼 즐겼다. 아이는 나뭇가지와 낙엽을 가지고 환경단체 선생님들과 함께 그 시간을 즐기고 놀았다. 탈 것을 좋아해서 나뭇가지를 이어 기차를 만들기도 하고 아빠 무등도 타며 저어새가 있는 저 멀리 풍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다른 형, 누나들이 그린 저어새 그림도 구경하고 엄마, 아빠가 그리는 저어새 그림을 열심히 방해도 해가며 자기 호기심을 꾹꾹 다 채웠다.
동물들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그들의 서식지를 살펴보는 시간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만든다. 이게 진짜 환경 감수성을 키우는 시간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예상치 못하게 어른도 교육시켰다. 남편은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달 금개구리도, 다다음달 점박이 물범도 보러 가자고 했다.
그래, 좋아. 떠나자!